최근 취임 3주년을 맞은 서병수 부산시장을 인터뷰했다. 꽤 많았던 질문과 답변 중 유독 눈에 띄는 대목이 있었다. '3년 동안 아쉬운 정책을 꼽아달라'는 질문에 서 시장은 "부산국제영화제(BIFF)와 해수담수화 공급을 둘러싼 갈등이 초기 소통 부족으로 장기화돼 매우 아쉽다"고 했다. 서 시장은 기자 간담회에서도 "BIFF와 해수담수화 공급 갈등에 관한 초기 대응이 부족해 공감대를 얻는 데 실패했다. 반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 시장이 공개적인 자리에서 '반성'이란 단어를 사용할 만큼 BIFF와 해수담수화 갈등은 깊은 상처를 넘겼다. 직접 드러난 것이 지지율이다. 지난 5월 리얼미터의 전국 시장·도지사 직무수행 긍정평가 조사에서 서 시장은 34.1%로 15위에 그쳤다. 또 한국갤럽의 올해 상반기 시장·도지사 직무수행 지지율에서는 38%로 14위에 머물렀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서 시장의 직무수행 지지율은 하위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서 시장의 직무수행 능력은 정말 하위권 수준일까. 서 시장을 향한 여론조사 결과는 왜 가혹할까. 서 시장도 답을 알고 있다. 그는 "사회적 갈등을 재빨리 해결하지 못했다는 무언의 질책이 직무수행 평가에 반영돼 나타나는 것"이라고 자평했다.
서 시장이 분석한 원인의 핵심은 '소통 부족'이다. 돌려서 표현하면 '여론 껴안기'에 실패했다는 뜻이다. 여기에 숨은 의미가 내포돼 있다. 바로 '명분'이다. BIFF나 해수담수화에 대해 서 시장은 나름대로 뚜렷한 명분을 갖고 있었으나 여론을 정확하게 읽지 못했다.
명분과 여론. 두 단어는 정치나 행정의 핵심이다. 정치가든 행정가든 명분에 따라 움직인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여론이다. 명분에 따라 형성되는 여론의 향방이 결정적이다. 아무리 명분이 좋아도 여론이 등을 돌린다면 갈등만 초래할 것이다. 돌아가서 보자. BIFF와 해수담수화 공급 문제에 부산시와 서 시장은 분명 확실한 명분을 가지고 있었다. 문제는 그 명분을 여론이 이해했느냐는 점이다. 공직자들은 두 사안에 관해 '억울하다'는 하소연을 숱하게 털어놓았다. 과연 그 억울함(명분)이 공직사회 밖에서도 통용됐을까. 아니다. 갈등이 발생했다는 것은 여론이 명분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증거다.
김해공항 확장도 비슷한 유형이다. 가덕신공항 건설을 가장 강하게 주장한 주인공은 서 시장이다. 그런데 뜻밖의 김해공항 확장으로 결론 났다. 많은 시민이 '김해 신공항'이라는 표현을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다. 서 시장 입장에서는 분명 명분이 있었다. 처절한 유치 경쟁을 통해 밀양으로 기울었던 분위기를 반전시켰다는 점을 내세우고 싶을 것이다. 그런 서 시장의 마음을 시민들은 이해할까.
중·동·서·영도구 원도심 4개 구 통합이 또다시 명분과 여론의 시험대에 섰다. 명분은 확실하다. 부산시와 서 시장은 원도심 통합의 필요성을 앞세워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내년 7월에는 통합구를 출범시킨다는 구체적인 로드맵까지 수립했다. 바람같이 몰아칠 기세다. 하지만 이번에도 반대 여론이 만만찮다. 중구민이 집단행동으로 반대 의사를 천명하고 나섰다. 자칫 또 다른 BIFF나 해수담수화가 될 수도 있다는 우려까지 제기된다.
명분이 옳다면 여론을 껴안고 가는 것은 어떨까. 시간이 더 걸려 민선 6기에 결과가 나지 않더라도 진정 부산과 시민을 위한 길이라면 긴 호흡으로 진행하는 것이 여론을 얻게 되는 방법이 될 것이다.
사회1부 차장 kukie@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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