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생들은 횡단보도 그림 위에서 교통법규에 대해 배운다. 대부분의 가정에서 유치원에 보낼 꿈도 꾸지 못했던 우리 세대는 초등학교에 가서야 신호등에 대해서 배웠다. 그러나 차가 그리 많지 않았던 예전에는 대부분의 사람이 교통법규를 지키지 않았다. 내가 대학에 다닐 때도 그랬다. 횡단보도까지 가기 위해 200m 이상 걸어가서 신호등을 기다리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내가 그렇게 서 있으면 친구들은 손가락을 머리 옆으로 돌리면서 무단횡단을 했다. 소위 운동권으로 분류되던 이들도 그랬다. 나는 교통법규를 지켰다는 이유 하나로 고지식함을 넘어 정신이상자로 분류되는 경험을 하면서 억울하다기보다는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황당한 일은 운전을 하면서부터 더 많아졌다. 멀리서부터 노란불을 보고 왔으니 곧 빨간불이 켜질 상황이라 차를 세웠다. 그러나 뒤에서 달려오던 자동차의 운전자는 자신의 교통법규 위반을 방해했다는 이유로 입에 담지도 못할 욕설을 퍼부었다. 모두가 잘 알고 있듯이 우리나라의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전쟁을 하고 있는 나라의 사망자 숫자를 넘어서고 있다. 이러한 비극적인 수치는 교통법규를 바라보는 시선과 결코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청문회를 지켜보면서도 늘 드는 생각 또한 그런 것이다. 위대한 그 무엇에 대한 성취가 나와 너와 우리가 반드시 지켜내야 할 헌법적 가치를 무시하고도 존재할 수 있는가 하고 말이다. 그러나 아는 것을 실천하기는 어렵다. 신문에 보도되는 자들의 뇌물과 전관예우에 대해서는 쉽게 분노하지만 정작 내가 그 자리에 서게 된다면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경험해본 바에 의하면 모든 사람이 손가락질하고 정신병자 취급을 하는 데에도 내가 믿는 것을 실천할 용기를 갖는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내 주변에서도 지켜본 예가 많다. 특히 뇌물을 들고 온 친·인척의 청탁을 들어주지 않았던, 남다르게 출세가도를 달리던 어떤 이는 지인들로부터 완전히 따돌림을 당해 다시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어떤 정권에서든 청문회에 나온 사람들에게 문제가 생기면 대부분 그때는 관례였다는 말을 한다. 지난 오륙십 년 동안의 역사가 혼란 속에서 영위되었으니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관행들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에 대해서 뼈아픈 성찰을 해야만 한다. 출세를 하기만 하면 다 용서되었던, 대의를 위해서는 무조건 눈감아줘야 한다는 논리는 우리 모두를 불행하게 만들었다. 교통법규를 어기는 일은 내가 벌금을 내면 끝나는 사소한 일이 아니라 누군가에 대한 치명적인 범죄 행위를 저지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는 눈에 보이는 성취에만 매달려왔기에 인간에 대한 예의에 관한 한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는 무뇌아들을 양산해왔다. 그 어떤 삶의 장에서도 가지지 못한 이를 배려하고 무시당하지 않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집중하지 못했다. 그저 남다르게 쟁취하기만 하면 다 용서해주었다. 그 문제에 대한 뼈아픈 성찰과 노력이 있었다면 노래 때문에 사람을 죽이고, 내 시야를 가렸다는 이유로 앞사람의 올려 묶은 머리카락을 싹둑 자르는 엽기적인 일들이 이렇게 자주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자신의 여자 친구를 끔찍하게 폭행하는 데이트 폭력 사건이 한 해 7000건을 넘기고 있고, 살인으로 이어진 사건도 200건을 넘어섰다. 모두가 화가 나 있는 형국이니 우리는 지옥에서 살고 있는 셈이다.

이 세상에는 많은 사람이 살고 있고 그래서 참으로 다양한 일이 벌어진다. 수업을 하면서 만나게 되는 아이들의 당혹스러운 말이나 행동을 대하면서도 그러려니 하는 마음을 가지려 애를 쓴다. 그러나 요즘 아이들에게서 나타나는 가장 두드러지는 변화는 생각을 하지 않으려 한다는 점이다. 아무리 영상세대라고는 하지만 스무 살이 되도록 단 한 권의 책에 대해서도 깊은 성찰의 시간을 가지지 않았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점에서는 책을 많이 읽거나 학업 성적이 좋은 아이들이 더 위험한 상황에 놓여 있다. 그들은 내가 원하는 성적을 얻기 위해서 기계적으로 책장을 넘긴다. 그런 독서가 사회적 차원의 인륜성의 성숙에 관여했을 리 없다. 우리의 교육시스템 또한 보이지 않는 가치 따위는 무시하도록 부추겼다. 성적 우수자들의 추악한 범죄가 만든 재앙적 상황은 지난 정권의 몰락을 통해 낱낱이 드러나는 것을 우리는 이미 지켜보았다. 대한민국은 지금 초고령사회로 분류된다.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가 공존해야만 하는 사회로 진입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내 안의 적폐를 청산하지 못한다면 인간이란 반드시 사랑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도 인지하지 못한 채 삶을 허비하는 참상 또한 피할 길이 없을 것이다. 어떤 삶에 놓인 누구든 존중되어야 함을 깊이 자각하고 체득하는 기회를 가지는 것은 살아가는 나날 중에서 반드시 수행해야 할 가장 소중한 임무가 되어야 한다. 적폐청산의 열망이 가득한 우리에게는 더 그렇다.

동의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