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대다수 나라의 국민은 표현의 자유 및 언론의 자유를 보장받는 사회에서 살고 있다. 이렇게 매우 당연시되는 가치 안에서 중요하게 생각해 볼 부분은 단순한 '표현의 자유' 가 아니라 '표현 후의 자유'가 어떤 모습으로 유지되는가 하는 점이다. 이는 북한, 쿠바, 사우디아라비아, 시리아 등과 같이 표현의 자유가 상대적으로 제한된 국가들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 러시아, 영국, 그리고 심지어 미국도 포함한다. 많은 국가가 공공장소에서 감시카메라 등의 첨단기술을 사용함으로써 편리성과 안전성을 보장하는 동시에 기존 일상에서의 윤리, 도덕적 영역에서 여러 도전을 불러오는 것도 이런 예 중 하나이다.
그뿐만 아니라 소셜미디어라는 효율적이고 간편한 정보 공유의 장이 등장하면서 사람들의 정보 처리량도 늘었고 간결화된 정보에 대한 요구도 커져 왔다. 동시에 정보와 허위정보 모두가 개인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극도로 빠르게 퍼져 나갔다. 단적인 예로, 디지털미디어에 올린 단어 몇 개가 방대한 팔로어들을 이끌어내기도 하고 그에 따라 어마어마한 결과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가 주시할 필요가 있는 것은 정보의 재생성과 교류가 편리해진 오늘, 허위 정보와 가벼운 선동을 위한 정보들이 쉽게 단상을 오르내리며 지지자를 가진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미국의 비영리 정책 싱크탱크 중 하나인 랜드코퍼레이션의 연구가 기억에 남는다. 랜드 코퍼레이션의 표현에 따르면 '진실의 부패(Truth Decay)' 문제는 단순히 거짓을 퍼뜨리기보다 사람들에게 모든 종류의 뉴스와 정보를 의심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이는 서서히 진실을 추구하는데 필요한, 또 사람이 살아가는 데 중요한 비판적 사고를 마비시키는 것이다.
언론인이자 역사학자인 햄프턴 사이즈는 최근 콜로라도 대학 졸업식 연설에서 "책은 페이스북에 가려져버렸다. 종이, 잉크와 풀의 마법과 같은 조합은 클릭의 흔적들로 대체되어 버렸다. 이야기는 소모적 콘텐츠가 되었고, 언론사는 한낱 플랫폼이 되어버렸으며 이야기는 페이스북 화면 밑자락에서 기어 다니는 짧은 뉴스피드(news feed)가 되어 너덜너덜해졌다. 우리의 짧아지는 집중력과 빠르게 꿈틀거리는 손가락에 더해진 정보의 민주화는 바벨탑이 되어 우리가 서로를 이해할 수 없도록 위협한다"고 표현했다.
한편 선거 민주주의는 편협한 정치적 야망을 위해 사람들을 편 가르기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정치적으로 '때 묻지 않은' 무명의 마크롱이 최연소 프랑스 대통령이 되었을 때 언론은 희망을 보여주었다. 이는 브렉시트, 브렉시트 이후의 영국 총선, 그리고 미국 대선 소식이 알려지고 난 뒤라 그런지 특히나 반가운 뉴스였다.
마크롱은 구시대의 정치인들을 쓰러뜨리고 66%의 표를 얻으며 승리하였다. 그는 특유의 젊음으로 새로운 정당 레퓌블리크 앙마르슈(전진하는 공화국)를 뜨게 만들었다. 프랑스의 유권자들은 이 신당을 지지함으로써 이 젊은 리더에게 국회에서 긴 정치적 경험에서 비롯된 무기력함을 변화시킬 추진력을 쥐여주었다. 이렇게 뽑힌 새로운 의원들은 이전의 의원들보다 평균적으로 10세가 젊다고 한다. 정부와 국회의 여성이 차지하는 비중도 크게 늘었다.
그러나 이 현상을 다른 각도에서도 볼 수 있다. 54%의 유권자들은 이 국회 투표에서 자신의 정당이나 자신이 원하는 후보자가 뽑히지 않을 것을 굳게 믿으며 투표권을 행사하지 않았다고 한다. 투표하지 않은 54%는 적은 수가 아니다. 승리하지 못할 것이라 여겨지는 후보자를 위해 투표하는 것이 결과에 아무런 차이를 가져올 수 없고 그저 겹겹이 쌓인 '사표'라고 생각하는 것은 우려스럽기 그지없다.
"투표해서 뭣하나? 어차피 아무 차이가 없는데" 혹은 "나는 정치적이지 않다"고 얘기하며 투표를 일종의 선택적 취미처럼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것도 드물지 않다. 이것이 세계에 자유의 힘 그리고 평등주의를 퍼트린 긍지 높은 프랑스의 안타까운 일면이다. 최근 영국이나 미국의 선거 소식도 선거가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 근대 민주주의의 문제점을 해결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려주는 듯하다. 어떻게 민주주의를 개혁할 것인가 하는 것은 역사적 도전이지만 여러 방면에서 개선의 필요성이 있다.
이러한 때일수록 새로운 정보 교류 방식과 민주주의의 발전에 대해 한 번 더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그 어느 때보다 깨어 있는 사람들의 기민한 개입이 필요한 때이다.
부산국제교류재단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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