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움 버그라고도 하는 Y2K(2000년) 문제로 한동안 전 세계가 난리였다. 1970년대 중반만 하더라도 10MB 하드디스크가 당시 돈으로 수백만 원을 호가했다. 1980년대 초 수백억 원이 넘는 대형 메인프레임 컴퓨터에 연결된 하드디스크는 세탁기보다 더 컸지만 용량은 기껏해야 100MB 수준이었다.
1960,70년대 세계 최강이었던 IBM 360 컴퓨터의 RAM은 1MB 미만이 대부분이었다. 따라서 프로그램과 데이터를 저장하고 처리하기 위해서는 소요되는 메모리 용량을 최소로 줄여야 했다. 글자 한 자라도 줄여야 했기 때문에 연도를 표시할 때 앞 두 자리를 줄여서 표기했다. 즉 1980은 80으로 기록했다. 그런데 2000년 이후가 되면 00, 01 등으로 표시되어 1900, 1901년과 구분이 되지 않아 각종 컴퓨터, 소프트웨어, 정보시스템, 제어기기 등에서 시각 표시와 기간 계산에서 대혼란이 온다는 경고가 쏟아졌다.
은행 예금, 보험 등에 문제가 생길 뿐 아니라 엘리베이터가 오작동하고 원자력발전소에 이상이 생기고 비행기가 추락할 수도 있다는 말도 나왔다. 정보 전문가, 컴퓨터 전문가, 언론 등이 각종 시나리오를 내놓았고 세계는 보이지 않는 공포에 시달렸다. 각국 정부, 각 기업은 컴퓨터, 제어기기를 교체하고 예전에 작성된 프로그램들과 데이터를 수정하는 작업에 막대한 돈과 노력을 투입했다.
정보산업, 정보 전문가들은 어마어마한 특수를 누렸다. 그러나 정작 2000년 자정이 지나면서 걱정하던 문제는 생기지 않았다. 철저한 대비 덕분이라는 주장도 있었지만, 아무 대비도 하지 않았던 국가들에도 문제가 생기지 않았다. Y2K 문제는 꽤 과학적인 것처럼 보이는 주장이었지만, 제대로 된 실험과 검증을 해보지도 않았다. 그럴듯한 과학지식, 산업계 이해, 인류의 본능적 공포심의 합작품이다.
한때 선풍기를 틀어놓고 자던 사람이 사망했다는 언론보도가 많았다. 밀폐된 방에서 선풍기를 틀어놓고 자면 저산소 혈증으로 질식사하거나 저체온증으로 사망할 수 있다고 알려졌다. 선풍기 바람이 코로 지나가면 베르누이원리에 의해 폐 속의 공기가 빨려 나와 질식한다, 선풍기 바람이 체온을 저하시켜 사망한다는 주장들이었다. 사망한 사람 방에 선풍기가 켜져 있으니 선풍기가 의심을 받았다. 그러나 여름에는 많은 사람이 선풍기를 켜고 잔다는 점을 간과했다. 이 과학상식은 결국 아무런 근거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송전선, 전기장판, 헤어드라이어에서 발생하는 전자기파도 몸에 해롭다는 주장이 많다. 전자기파가 세포의 유전자 변형을 일으켜 암을 발생시킨다는 것이다. 2002년 WHO는 이들에서 발생하는 극저주파 전자기파에 의해 유전자가 변형되어 암을 유발한다는 증거가 아직 없다고 한다. 그런데도 2005년 영국에서 전력선 200m 이내 거주자는 600m 밖 거주자보다 백혈병 발생 위험이 상당히 높다는 연구가 나왔다. 이 연구의 방법과 해석에서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비판이 많았지만, 연구 결과만 널리 퍼졌다.
2013년 엘리엇 등이 5만 건 이상의 백혈병을 포함한 암 발병 사례를 조사한 결과 전력선과 연관 있다는 증거가 없다고 밝혔다. 현재 미국 국립암연구소 등에서도 극저주파 전자기장이 암 등을 유발하는 증거가 확실하지 않다고 밝히고 있다. 확실하게 안전하다는 완벽한 증명도 되지 않았다. 과학도 완벽하지 않다. 우리는 이들 극저주파 전자기장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어느 선에서 접점을 찾아야 할지 쉬운 문제는 아니다. 과학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문제이다. WHO도 이해당사자들과 꾸준한 소통과 조정을 권고하고 있다.
육류 등에 많이 포함된 포화지방이 콜레스테롤을 높이고 심장병을 유발한다는 것이 오랜 건강 상식이었다. 최근 이런 주장이 근거가 없음이 밝혀지고 있다. 오랫동안 믿어 왔던 상식이었고 식품업계 영향을 의심하기 때문인지 아직 많은 사람이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과학을 인용한 그럴듯한 주장이 많다. 그러나 과학도 오류에 빠지기 쉽고 완벽하게 증명하지 못하는 사실도 많다. 완벽하고 진실한 과학의 길은 쉽지 않다. 게다가 정치를 만나면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된다. 오랜 기간에 걸친 소통과 축적된 경험만이 과학의 부족한 점을 채울 것이다.
KAIST 산업·시스템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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