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경(追更)이라는 지상(紙上)의 단어가 내 삶에까지 들어올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다. 적어도 이달 초까지는. 문재인 정부가 발표한 11조 원에 달하는 추가경정예산 항목을 읽어내려가다 한 대목에 눈길이 멈췄다. '육아휴직급여 2배 인상'. 통상임금의 40%에서 80%로 확대해 최대 150만 원까지 육아휴직급여를 지급한다는 내용이었다. 기자이기 전에 임신부로서의 정체성이 발동됐다. '정책 하나로 바로 몇 달 뒤 내 삶의 질이 달라질 수도 있겠구나!' 이날의 작은 깨달음은 한 달이 넘도록 결정되지 않은 차기 금융위원장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졌다. 금융위원장이 내 삶, 나아가 우리 삶을 바꿀 수 있을까. 금융위 출입 기자로 최근 가장 많이 묻고 또 듣는 질문이 바로 이것이기 때문이다. "금융위원장은 누가 될까요."

차기 위원장으로 현재 유력하게 거론되는 사람은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이다. 그에게는 '대책반장'과 '관치금융의 화신'이라는 동전의 양면 같은 수식어가 붙어 있다. 시민단체나 일부 여당 의원도 그의 복귀를 반대하는 것으로 알려져 금융위원장 인선은 여전히 불투명한 상황이다.

금융은 흔히 가계, 기업의 '핏줄'로 비유된다. 실물경제에 필요한 돈의 흐름을 좌우한다는 의미다. 금융위원장의 당면 과제로는 사상 최대 수준(지난 3월 말 기준 1359조7000억 원)으로 불어난 가계부채 문제가 있다. 앞서 임명된 김동연 경제부총리, 내정된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가 가계부채 문제에 대해 언급하고 있지만 정작 주무 부처 금융위는 수장이 없으니 '대답 없는 메아리'가 될 수밖에 없었다. 이번 주 기재부, 국토부, 금융위가 발표할 부동산 대책은 결국 위원장이 공석인 가운데 나오게 됐다.

특히 부산은 금융중심지로서 금융당국 수장에 대한 관심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대통령 공약 사항인 해양선박금융공사에 대한 구체적인 청사진을 기다리고 있다. 신임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은 공사 추진 의지를 확고히 밝혔다. 금융위원장의 입장이 주목된다. 부처 간 치열한 논쟁을 통해 해운업 활성화라는 본래 취지를 실현할 수 있는 곳이 공약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며칠 전 남편과의 대화가 떠오른다. "대출받아 이사할까." 직장을 다니며 아이를 키우기 좋은 방법을 고민하다 나온 말이었다. 변두리 작은 집에서 출입처에 가까운 더 넓은 집으로 가자는 것. 그때 불현듯 금융위에서 숱하게 들었던 문구가 반사적으로 튀어나왔다. "여신심사도 강화됐고 이자뿐 아니라 원금도 갚아야 한다던데, 우리 형편에 여력이 될까?" 금융위원장이 펼칠 정책은 내 삶, 나아가 내 아이의 삶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금융위원장의 조속한 선임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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