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분도리는 부산 서구 서대신동의 옛 지명이다. 서부경찰서 일대로 보면 틀림없다. 옛날 버드나무를 이용해 고리짝을 만드는 사람이 많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고분도리는 걸립으로 유명했다. 걸립은 집집이 풍물을 치고 다니며 굿을 해주고 돈과 곡식을 얻는 일이다. 고분도리 걸립은 한 해를 시작하는 즈음에 나쁜 일은 물리치고 좋은 일이 많이 생기기를 기원하는 지신밟기의 한 형태다. 한때 활동 영역이 동해안으로 따라 송정에서 경북 영덕 강구까지 미쳤다고 하니 소리와 짜임새가 남달랐음을 짐작할 수 있다. 2011년 3월 '부산고분도리걸립'이 부산시 무형문화재 제18호로 지정됐다.

부산고분도리걸립은 오는 9월 경남 김해에서 열리는 제58회 한국민속예술축제에 부산 대표로 참가한다. 제46회 부산민속예술축제에서 최우수상을 받아 자격을 얻었다. 전체 구성과 소리가 좋았고, 30분가량 공연 시간 내내 출연진이 미소를 잃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난달 27일 동래구 금강공원 내 부산민속예술관 놀이마당에서 열린 제46회 부산민속예술축제는 부산시와 부산시교육청이 주최하고 부산민속예술보존회가 주관했다. 지난해 최우수상을 탄 다대포후리소리 시연과 함께 동래지신밟기, 동래학춤, 사하방아소리, 구덕망께터다지기, 강태홍류가야금산조, 수영지신밟기, 부산고분도리걸립, 기장오구굿, 부산농악, 부산영산재, 동래한량춤, 수영농청놀이, 동래고무, 구포지신밟기 등 14개 종목이 경연에 나섰다. 예능 분야 부산시 지정 무형문화재와 비지정 전통민속이 총출동했다는 이야기다.

이날 행사가 여느 때와 다른 이유는 서병수 시장의 개막식 인사말에서 나왔다. 그는 "시장이 참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한류의 바탕이 우리 전통민속인 만큼 이를 지원하는 데 힘쓰겠다"고 다짐했다.

얼떨결에 손뼉을 치며 '이게 무슨 소리지' 하고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시가 주최하는 모든 행사에 시장이 참석할 순 없는 노릇이지만 반 100년 세월의 무게와 행사 성격을 생각하면 고약한 일이다 싶었다. 그동안 이 행사를 챙기지 못한 전 시장들이 무심했나, 46년 만에 처음 참석했으니 서 시장이 박수를 받는 것은 당연한가.

개막식이 마무리되나 싶은 와중에 내빈석이 웅성거리더니 서 시장이 자리를 떴다. "개막식 바로 뒤 순서가 동래학춤입니다. 한 종목만이라도 보고 가시죠"라는 권유가 있었으나 '다음 일정'이란 게 이를 허락지 않았던 모양이다. 이날 예고된 그의 일정은 공공어린이집연합회 체육대회와 이 행사를 거쳐 자원봉사 V-페스티벌, 제11회 부산가족축제, 여성가족진담 등 오전부터 오후 늦게까지 빼곡하게 이어졌다.

서 시장 입장에서야 새로 단장한 부산민속예술관 건물을 배경으로 무형문화재 지원을 약속했으니 이 정도면 손색없는 일이라고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게 최선일까.

행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실무자나 종목별 대표자들이 모일 기회가 있었을 터. 그때 '아픈 손가락'이 무엇인지 건의사항을 모으고 해결 방안을 행정적으로 검토, 서 시장에게 미리 보고하는 절차를 거쳤다면 시장 인사말은 이랬을 듯하다. "여러분들을 처음 뵙는 기회이니 그동안 실무 작업을 끝낸 몇 가지 사안을 설명드리겠습니다. 이것저것은 제가 책임지고 해결할 수 있는 일이지만 나머지는 중앙 부처와의 협의 등 시간이 걸린다는 점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특히 개막식에 얼굴만 내밀고 나가는 모습은 이제 사라져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그게 어떤 의미인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세상 아닌가.

지방선거가 1년 앞으로 다가왔다. 최근 서 시장의 시민 스킨십이 눈에 띄게 활발하다. 청년정책 소상공인정책 등 굵직한 정책을 내놓고 있다. 정권이 바뀌었고 자유한국당은 지리멸렬하다. 반대로 더불어민주당은 이번엔 지방 권력을 교체하겠다며 단단히 벼르고 있다. 그에게 재선은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운 도전이다.

그런 면에서 서 시장의 광폭 행보는 현직 프리미엄을 최대한 활용하자는 취지로 읽힌다. 이를 나무랄 생각은 없다. 하지만 이것이 형식적으로 되풀이되면 감동을 주지 못하고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 46년 만의 부산민속예술축제 개막식 참석은 그런 의미에서 곱씹어 볼 일이다.

'인간 노무현'에 초점을 맞춘 '노무현입니다'가 개봉 열흘 만에 '다큐멘터리 영화 최단기간 관객 100만 돌파' 기록을 세웠다. 영화 말미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노무현 전 대통령 장례 기간, 하루는 억수 같은 소나기가 내렸다. 조문 행렬이 끝없이 이어진 상황인 만큼 나이가 많거나 몸이 불편한 사람은 먼저 조문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 하지만 누구도 순서를 바꿔 앞으로 나서지 않았다. 마음에서 우러나와 스스로 하는 일은 소나기도 막지 못했다. 서 시장은 무엇으로 부산 시민의 마음을 얻으려 하는가.

논설위원 jsdo@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