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란 자기 생각이나 느낌을 표현하고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수단이자 사회관습적인 체계다. 공동체 내에서 언어의 의미는 공유되고 이해될 수 있어야 한다. 즉, 언어는 사람들 사이의 약속이기에 개인이 마음대로 그 의미를 바꿀 수 없다. 그럼에도 동일한 언어가 사용하는 개인의 신념이나 성향에 따라 자의적으로 표현되고 전달되는 경우가 있다. '정상'과 '비정상'이 그중의 하나다. 최근에 그 극단적인 예를 우리는 박근혜 정부의 몰락과 문재인 정부의 출범에서 경험하고 있다.

'정상(normality)'이란 말은 규범(norm)에서 기원한다. '정상'을 규범이라는 기준에서 정의하면 '옳다'라는 뜻을 함의한다. 이 경우에 '정상'은 불연속적이고 본질적인 질적 개념이다. 반면에 '정상'을 규범적 전제가 필요하지 않은 기준에서 정의할 때는 통계적인 평균개념이 된다. 이 경우에 '정상'이란 연속적이고 상대적인 양적 개념이다. 이렇듯 '정상'이란 말에는 규범적 기준이라는 질적 개념과 탈규범적 기준이라는 양적 개념을 모두 함축하고 있다. 예컨대, 100명 중에서 90명이 결핵균을 가지고 있을 때 질적 측면에서는 결핵균이 없는 사람이 '정상'이지만 통계적인 평균개념에서는 결핵균이 있는 사람이 '정상'이 된다. '정상'이란 말에 함축된 복합적 의미 때문에 사회현상을 다루는 사회과학에서 '정상'은 항상 논란의 여지가 되는 문제가 많은 언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집권 2년 차 신년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뜬금없이 '비정상'의 '정상화'를 국정 화두로 제시했다. 정치나 국가정책과 같은 복잡한 사회현상을 다루는 최고 통치권자가 사회과학적으로 논란의 소지가 많은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말을 왜 들고 나왔는지 몹시 의아했다.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정상'이란 말의 단순한 사전적 의미는 '제대로인 상태'를 뜻한다. '비정상'의 '정상화'가 '제대로이지 않은 상태'를 '제대로인 상태'로 만드는 것이라면, 그가 생각하는 '제대로이지 않은 사회'와 '제대로인 사회'란 과연 어떤 사회일까?

다양성과 다원화를 특징으로 하는 현대사회에서 '제대로인 상태'를 간단히 규정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비정상'의 '정상화'를 국정의 화두로 꺼내든 박근혜 대통령의 저의가 참 궁금했다. 무엇이 '비정상'이고 어떻게 '정상화'한다는 것일까? 현대사회에서는 구속이나 준거를 강요하는 규범적 기준은 약화되고, 규범적 전제를 필요로 하지 않는 통계적 평균개념이 기준으로 적용되는 경우가 늘어난다. 그 때문에 '비정상'의 '정상화'란 말에는 위험성이 함축되어 있어 사용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예컨대, 보통사람의 평균지능에서 멀리 떨어진 천재나 정신지체는 '비정상'의 '정상화'의 대상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박근혜 자신은 절대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살았다. 보통사람들의 평균적 삶과는 한참 동떨어진 삶을 통해 형성된 그의 신념이나 가치는 보통사람들의 평균적 신념이나 가치와 상당한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신념이나 가치를 '비정상'이라고 간단히 단정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의 신념이나 가치가 '비정상'이었다면 어떻게 그가 대통령이 될 수 있었으며, 그를 지지했던 사람들의 자존심은 또 어떻게 되겠는가? 그래서 그가 말하는 '비정상'이 무엇이며 '정상화'는 어떻게 하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필자의 궁금증은 오래가지 않았다. 박근혜가 말하는 '비정상'의 '정상화'의 실체는 국정교과서와 예술인 블랙리스트로 그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냈다. 박근혜 정부에서 '비정상'이란 최고 통치자의 신념이나 가치에 반하는 그 모든 현상으로 인식되었다. '정상화'란 그런 현상을 극복하거나 제거하는 과정이었다. '정상화'의 구체적인 방법이 바로 국정교과서와 블랙리스트였다. 혼이 비정상인 청소년을 '정상화'하는 데 필요한 것은 국정교과서였다. 비판적인 예술인들은 문화 융성에 해악을 끼치는 비정상적인 존재였다. 이들을 축출하거나 관리해서 문화계를 '정상화'하는 데 블랙리스트는 유용한 수단이 되었다. 박근혜의 '비정상의 '정상화'는 역설적으로 정반대의 '비정상의 정상화'를 원하는 민초들의 촛불에 의해 간단히 부정되었다.

'비정상'의 '정상화'는 박근혜 정권의 부메랑으로 돌아와 몰락을 자초할 정도로 위험성이 내포된 언어였다. 어느 동료 교수는 필자에게 자기 부하 직원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는다며 비정상이지 않으냐고 반문한다. '비정상'이란 말에 함축된 위험성을 알고나 있는지.

부산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정신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