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초 덴마크에서 불법체류 혐의로 긴급체포된 최순실 씨 딸 정유라 씨가 법정에서 한국 언론과 인터뷰를 할 때의 태도는 다소 예상 밖이었다. "돈도 실력이다"는 어처구니없는 SNS 댓글 등으로 미뤄 제대로 논리를 갖춰 말이라도 할까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차분하면서도 냉정하게 질문에 답하고 묻지도 않은 내용까지 상세하게 설명하는 모습에 다들 놀라기도 했다. 그러니 변호사 등과 교감하며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된 것 아니냐는 분석도 있었다.

긴급체포 151일 만에 국내에 들어온 정 씨의 모습 역시 거침없었다. 북새통을 이룬 공항에서 정 씨는 말을 아낄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전혀 당황하지 않고 5분간 말을 이어갔다. 주위를 천천히 둘러보며 미소를 짓기까지 했다. 자신과 관련된 특혜를 묻는 질문에는 모른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등 과연 '모전여전' 소리가 나올 만했다.

물론 하고 싶은 말을 하지 않고는 참지 못하는 성격답게 국민의 공분을 불러일으킬 만한 발언도 없지 않았다. 학교를 안 갔기 때문에 입학 취소는 당연히 인정한다면서도 너무 이를 강조하려다보니 "내 전공이 뭔지도 잘 모른다"는 황당한 말까지 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다는 소리가 괜히 나온 게 아니다.

하지만 정 씨의 발언을 곰곰히 뜯어보면 덴마크에서의 인터뷰 때와 상당히 닮아 있다. 대학 때 전공이 뭔지도 모른다는 말 또한 어머니 최 씨가 모든 걸 다 알아서 한 일이라는 걸 강조하려는 계산된 답변이라는 느낌이 짙다. "어머니와 박 전 대통령님과의 사이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는 하나도 모르는데 일단 저는 좀 억울하다"는 발언도 같은 맥락이다.

정 씨가 국내로 소환되면서 최순실 게이트 수사가 새 국면을 맞게 됐다. '특검 도우미' 역할을 했던 장시호 씨처럼 새로운 사실을 술술 불어줄지 모른다는 예상도 없지 않다. 럭비공처럼 좌충우돌하는 성격을 잘 이용하면 뜻밖의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기대다.

노승일 전 K스포츠재단 부장 또한 지난달 "정 씨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이라며 "귀국해 입 열면 다 터진다"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국민 앞에 두 차례 모습을 보인 정 씨의 계산된 듯한 태도로 미뤄 과연 제대로 입을 열지는 미지수다. 거침없는 성격 이면에 숨겨진 치밀함까지 어머니를 쏙 빼닮은 것 같아 더욱 그렇다. 검찰이 럭비공을 어떻게 이곳저곳 튀게 할지 두고 볼 일이다.

장재건 논설위원 jjk@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