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정오 부산국제영화제(BIFF) 김지석 부집행위원장 겸 수석프로그래머의 영결식이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 중극장에서 엄수되었다. 영화인들을 비롯해 영화를 사랑하는 많은 사람의 애도 속에서 고인은 영면했다. 같은 날 비슷한 시간에 비통한 목소리의 전화를 한 통 받았다. "선생님, ○○ 형이 죽었습니다."
갑자기 멍해지는 몸과 마음은 어찌할 수 없는 순간을 맞이하였다. 연주회 건으로 이틀 전에도 통화하였던 음악인이다. 이제 마흔이다. 처자식이 있는 한 집안의 가장이며, 새롭게 시도하는 금관앙상블 '파도도시크루'의 맏형으로 정말 음악을 사랑하고 열심히 활동하는 음악인이었다. "어떻게 된 거니?" "믿기지 않지만, 자살이랍니다." 전화기 넘어 울먹이는 목소리는 허공을 메아리치고 있을 뿐이었다.
같은 날 두 죽음을 대하면서 필자는 많은 생각에 몸과 마음이 괴로웠다. 너무 많은 일로 과로사한 영화인과 정말 열심히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였으나 할 수 없음을 가슴에 묻고 명을 달리한 음악인의 죽음 앞에서 살아 있는 동안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다시금 생각해 볼 수밖에 없었다.
셜리 케이건의 책 '죽음이란 무엇인가'는 제14장 '자살에 관하여'에서 '자살'을 감정적으로 접근하기보다는 '도덕성'과 '합리성'으로 먼저 접근해야 한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있다. "합리적인 판단이라고 해도 자살은 비도덕적인 행동이다. 결론적으로 말해 자살은 도덕적으로 절대 용납할 수 없는 행동이다." 그러므로 자살은 결코 용인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극단적인 행동으로 이어지는 이유에 필자는 주목했다.
'자살'을 택하는 사람의 이유 중 대부분은 '경제 문제'다. 이는 승자독식의 우리 사회 현실을 보여주는 극단적 사례다. 음악계도 예외가 아니다. '고상한 음악을 하는 사람이 어떻게 돈을 이야기하느냐'고 하면서 핀잔을 주는 사람도 많다. 또한, 음악인의 음악 행위를 '자원봉사'해달라고 요구하는 이들 또한 많다. 하지만 예술인은 그 행위 자체가 생계의 수단이자 삶의 모든 것이다. 정당한 대가를 받아야 하며, 합리적 대우를 해주어야 한다. 이러한 대가와 대우는 우리 음악계에서 먼저 시행되어야 한다.
한 예를 들자.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일에 전념하여 좋은 음악인을 배출하는 사명에 충실한 많은 교수와 연주 활동에 충실한 대부분의 전문 연주자가 함께 모여 서로가 활동할 기회의 장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 이는 서로에게 유익하며, 함께함이 즐거운 음악이다.
하지만 현실은 어떠한가? 대학교수와 연주자 그리고 레슨까지 독식하고 있는 일부 음악인이 음악계를 뒤흔들고 있는 현실, 많은 교향악단이 있지만 일부 지휘자와 기획자들이 음악 현장을 좌지우지하는 모습에서 단원들에게 돌아가야 할 정당한 대가와 대우를 찾기는 어렵다.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찾다 보면 이러한 불공정하고 불평등한 사회 현상이 매우 뿌리 깊다는 현실을 직면하게 된다. 이럴 때마다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는 셀 수 없는 시간을 필자는 보냈다. 수많은 시도와 끊임없이 노력한 결과가 허공에 있는 것 같은 느낌, 어찌할 수 없는 현실의 벽. 하지만 가능한 일이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견뎌왔다. 지금이라도 좋은 자리를 만들라는 것, 좋은 대우를 해주라는 것은 아니다.
과정에 도덕성과 합리성을 적용하자는 것이다. 그리하여 두 번 다시는 이러한 죽음을 만들지 않기 위해 서로 나누고, 서로가 화합하자는 것이다. 지금은 힘들고 어려워도 같이 희망의 불을 피워보자는 것이다. 음악은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에 서로의 공존을 위해 스스로 윤리와 가치관의 공통분모를 키워 보자는 것이다.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서로를 위하고 자라날 우리의 미래 음악인을 위해 꼭 이루어 내야만 하는 일이다.
'우리들의 소유 관념이 때로는 우리들의 눈을 멀게 한다. 그래서 자기의 분수까지도 돌볼 새 없이 들뜨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언젠가 한 번은 빈손으로 돌아갈 것이다. 내 이 육신마저 버리고 홀연히 떠나갈 것이다'. 법정 스님께서 '무소유'에서 설파하신 말씀이다. 필자는 소유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다. 합리적인 소유를 하자는 것이다. 모두를 위해, 함께 가야 할 음악의 길을 위해 승자 독식이 아닌 합리적 소유를 하자는 것이다. 이러한 세상을 실현해야만 먼저 보낸 두 예술인의 삶이 헛되지 않을 것이다.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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