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대왕 시절, 조선의 실학자 유수원은 '우서'에서 이런 주장을 했다. "진휼하는 일 한 가지는 결코 국력만을 가지고는 힘들고, 굶주린 백성을 모두 살리기도 어렵다. 장사하는 법도가 한번 이루어져 수레와 배가 모두 통행되고 곡물 거래하는 큰 상인들이 흉년에 1000섬, 100섬의 미곡을 운반하게 되면, 비록 한 되에 1문의 이익을 얻는다 하더라도 상인에게는 큰 이익이 될 것이고, 백성에게도 큰 혜택이 될 것인데…."

흉년 때 가난한 백성을 도와주는 진휼은 조선 시대 가장 중요한 복지대책이었다. 그는 정부가 곡식을 비축해 나눠주거나 세금을 탕감해 주는 대책에는 한계가 있다고 보았다. 굶주린 백성을 모두 구하려면 궁극적으로 시장을 움직여야 한다고 본 것이다.

'부의 불균형'이 커다란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이를 완화하기 위한 '나눔'의 방안이 모색되고 있는데 그 방법은 크게 세 가지일 것이다. 첫째, 국가가 세금을 걷어 정부 예산으로 배분하는 것, 둘째 민간이 자발적으로 기부나 자선하는 방법, 마지막으로 시장을 통한 자율조정이다. 첫째, 둘째의 방안은 필요하겠지만 규모를 늘리는 데 한계가 있다. 따라서 영속적인 방법으로 세 번째 방법을 주목해야 한다.

직무 성과제가 엄격하게 적용되는 미국만큼 고소득자와 저소득자 간 임금 격차가 큰 나라는 드물 것이다. 그럼에도 미국은 사회적 화합을 깨지 않고 두꺼운 중산층을 유지하며 경제적 활력을 이어 오고 있다. 시장이 끊임없는 혁신을 통해 사회문제를 적절히 풀어왔기 때문이다.

시장을 통한 '나눔'의 대표적인 사례가 자본시장이다. 서구에서는 주식을 흔히 '셰어(share)'라고 부른다. 회사의 물질적 가치에서 부채를 뺀 양적 개념인 '스톡(stock)'이란 용어도 있지만, '나눔' '공유'의 의미를 가진 '셰어'라는 용어를 많이 쓰고 있다. 왜 주식을 '셰어'라고 부르고 있을까? 주식은 회사의 소유권을 공유하고 회사의 이익을 나누기 때문이다. 상장회사는 경영이익을 주주들에게 배당금 형태로 나누어 줄 뿐만 아니라 주가를 통해 회사의 가치 변동을 주주들과 공유한다. 반면 기업은 주식을 통해 자금을 조달받고 회사경영의 리스크를 여러 투자자와 나누어 분산시킬 수 있다. 이처럼 시장을 통한 '나눔'은 일방적 수혜가 아니라 서로 이익을 주고받는 구조이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커갈 수 있다.

미국 경제는 주식 시장 덕분에 짧은 기간 내 산업혁명을 이룩할 수 있었으며 지금도 신성장 동력 산업에 과감한 투자로 경제의 역동성을 유지하고 있다. 최근 미국은 창업기업의 위험을 분담하는 자본시장의 나눔 기능을 활용하여 이를 일자리 창출로 연결하고 있다. 이를 위해 2012년 미국 정부는 신생 기업들이 자본시장에서 쉽게 창업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획기적인 법안을 제정했다. 증권거래법 등 각 개별법안의 규제를 원스톱으로 완화하고 크라우드펀드, 사모시장을 활성화하는 신생기업지원법의 약칭을 일자리를 의미하는 '잡스법'으로 붙였다. 그뿐만 아니라 시장은 시장대로 소액투자자들이 편하게 주식투자를 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다. 고가의 주식을 소유하기 편하게 펀드 형태로 분할하기도 하고 경영리스크를 분산시키기 위해 여러 주식, 자산을 한 상품에 담는 상품도 출시했다.

그런데 우리 주식시장이 '나눔의 장'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넘어야 할 과제가 있다. 우선 정부는 자본시장에 대한 인식을 '가진 자의 재테크 시장'에서 '중산층의 나눔의 장'으로 바꾸어야 한다. 자본시장을 중산층의 재산증식과 일자리 창출의 핵심인 기업 육성의 중요한 열쇠라고 생각한다면 정책의 초점은 시장규제보다는 육성에 맞춰질 것이다. 둘째, 기업은 기업의 의사결정 구조를 투명하게 하고 투자자들과 항상 기업정보를 공유해야 한다. 투자자는 기업의 경영리스크를 함께 나누는 만큼 기업은 주주들을 기업의 주인으로 존중해야 한다. 이 점에서 투자자와 상장기업 간의 의사소통인 IR활동은 상시화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자본시장에 참여하여 나눔의 수혜를 보기 위해 일반 국민은 금융지식을 높일 필요가 있다. 펀드 등 금융상품이 점차 어렵고 복잡해지기 때문에 일반 대중도 시장의 변화와 금융상품에 대한 이해력이 필요하다.

부의 불균형 해결 등 복지는 국가 재정만으로 충분치 않다. 궁극적으로 시장이 움직여야 지속적인 개선이 가능하다. 왜 주식을 '나눔'과 '공유'를 의미하는 '셰어'로 부르는지를 생각하며, 기업의 이익을 다수의 소액주주와 나누고 신생기업의 창업을 뒷받침해 주는 자본시장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국IR협의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