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근대 경제사에서 동남권(부산 울산 경남)은 국가 경제성장의 한 축으로써 고용창출과 소득형성에 막중한 역할을 담당해 왔다. 거시적 관점에서 보면 경공업에서 중공업 중심으로 국가산업이 재편되는 과정에서 산업화와 고도성장의 토대가 되었으며, 경제 규모도 우리나라 GRDP(지역 내 총생산)의 16.1%, 제조업 수출 비중도 전체 수출 대비 25% 수준이다.

그러나 동남권 기업들은 경쟁력 상실과 구조개선 실기로 흥망의 기로에서 도전을 받고 있다. 전통산업의 위축과 새로운 사업 확보의 부진으로 그 고민은 더욱 깊어지는 모습이다.

다른 국가도 장기 저성장 가능성에 고심하고 있다. 여러 나라가 신산업 육성, 창업 활성화, 일자리 창출, 기술혁신 등 다양한 정책으로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무엇보다 혁신 주체로서 중소기업 지원을 강화하는 전략으로 성장 패러다임을 이동시키는 양상이다.

새 정부도 신성장을 이끌어갈 혁신의 아이콘으로 중소기업 육성을 선정했다. 중소기업은 개수로는 국내 사업체의 99%를 차지하고, 고용도 90% 가까이 책임지고 있다. 특히 부산은 고용 비중이 93%로 높아 여느 때보다 새 정부의 중소기업 정책에 기대하는 바가 크다.

물론 지금까지 역대 정부도 매년 중소기업 육성을 통한 성장 정책을 펴왔다. 그런데 선진국과의 성과 차이는 어디서 발생하는 것일까. '중소기업 생태계'에서 그 해법을 찾고자 한다. 흔히 생태계는 '창업'과 '성장' 그리고 '정리'와 '재도전'으로 이어지는 경로를 일컫는다. 건전한 기업 생태계는 한 국가의 경제 역동성과 직결된다. 많은 기업이 창업해 성장도 하고, 부진할 경우 수월하게 도태되거나 재기할 수 있는 환경을 잘 갖추어야 성장동력을 확보하는 경제 선순환 체계도 튼실해지기 때문이다.

'중소기업 생태계' 조성을 위해 고민해야 할 첫 번째는 새로운 분야의 사업기회에 도전하는 창업환경이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중소·중견기업의 창업이 활발한 국가의 성장과 고용성과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높았다. 중소기업에서 중견기업, 대기업으로 성장 가능성이 높은 '기회형 창업' 비중이 크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중소기업 창업의 메카로 일컫는 이스라엘의 예를 보더라도 58%가 '기회형 창업'인 반면 우리나라는 20% 수준에 머물고 있다. 우리나라 신규 창업률이 높지만, 낮은 부가가치와 쉽게 진입하는 생계형 창업 비율이 60% 이상인 점을 개선해야 한다.

그다음으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강소기업을 육성하는 선택과 집중 전략이 긴요하다. 정부 통계에 따르면 금융위기 이후 매년 창업하는 기업의 수는 전년 대비 6~12% 수준으로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5년도 못 버티고 '죽음의 계곡'을 탈출 못 하는 단명 기업이 50%를 넘는다. 일반적으로 중소기업의 실패는 시장으로부터 기술력 및 잠재력을 인정받지 못하는 창업 초기에 발생하는 까닭에 정책의 우선순위는 장기 성장을 견인하는 데 두어야 한다.

최근 국책연구기관이 1982년부터 2014년까지 대기업과 비교한 중소기업의 1인당 부가가치 비중이 점차 축소되고, 생산액 비중 또한 정체되는 것으로 발표했다. 과거 성장 중시 경제하에 자본력이 낮은 기업의 유동성을 지원하는 획일적인 지원 방식에서 생산성과 생존력을 갖춘 기업에 대해 경쟁력을 갖도록 지원하는 노력이 필요한 이유다. 궁극적으로 지역경제 전체의 부가가치 창출을 극대화하는 '자원배분 효율성 원칙'이 중요하다.

아울러 구조개선을 통한 재도전과 퇴출이 유연하게 이루어지는 제도적 기반도 강화되어야 한다. 이는 실패 비용을 떨어뜨려 혁신적 중소기업의 진입 장벽을 낮춤으로써 산업 전반의 생산성을 높인다.

잠재력을 갖춘 창업기업의 실패는 상당 부분 정보 비대칭에 의한 시장실패로 공적 부문의 역할이 요구된다. 일례로 성장성은 있으나 일시적 어려움을 겪는 기업에게 캠코의 자산매입 후 임대프로그램(Sale&Leaseback) 방식의 유동성 지원이나, 중소기업진흥공단의 구조개선 전용자금 및 회생 컨설팅은 공적 역할의 좋은 본보기이다. 기업뿐만 아니라 금융공공기관들로부터 실패한 중소기업인의 부실채권을 일괄 매입해 재기를 지원하거나 공적 채무조정 제도를 활용한 회생지원도 훌륭한 기반이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경제 성장률, 고용 유지율, 소득성장 측면에서 대기업 정책을 소홀히 다루기 어렵다.

동남권 경제에는 철강, 해운, 조선업 등 구조조정 한파가 아직 가시지 않고 있다. 바야흐로 성공적인 중소기업 육성 해법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과 지혜가 필요하다. '중소기업은 중견기업으로, 중견기업은 대기업으로'의 원활한 성장 사다리가 작동하는 역동적인 기업생태계 조성으로 동남권 지역 경제의 재도약을 기대한다.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