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20일이 됐다. 스타트가 좋다.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희망적 전망이 대세다. 한국갤럽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주 응답자의 88%가 문 대통령이 직무를 잘 수행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그 전주의 87%에 이어 계속 고공행진 중이다. 덩달아 여당인 민주당의 지지율도 51%를 기록하고 있다.
국민 눈에 비친 문재인 정부의 모습은 우선 전임 박근혜 정부와 철저하게 다르다는 것이다. 점심을 마친 대통령이 참모들과 함께 편안한 차림으로 커피를 들고 산책하는 모습에서 참신함을 느끼게 된다. 그다음 느끼게 되는 것이 '아하! 이렇게 일을 쉽게 풀 수도 있구나'는 생각이다. 업무지시를 통해서 논란의 소지가 있을 수 있는 과제들을 가볍게 돌파한다.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대통령의 한마디 한마디를 받아쓰기 바빴던 경직된 모습과 대비된다. 국회의원 절반을 넘는 집권당이 국회선진화법에 가로막혀 대통령 핵심추진과제가 표류하고, 대통령은 여당 지도부를 꾸짖으며 야당의 발목잡기 탓만 하던 모습과 대비된다. 전임 정권의 불통과 무능의 이미지 덕분에 지금 문재인 정부는 무슨 일을 해도 잘한다는 말을 듣고 있다.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인준 절차가 끝나면 본격적으로 내각을 구성하게 된다. 이 후보자는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위장전입을 시인했다. 문제는 이 후보자 외에도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도 위장전입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고위 공직자 배제 5대 인사원칙' 중 하나가 바로 위장전입이다. 물론 조기 대선을 통해 대통령에 당선됐고, 두 달 가까운 정권인수인계과정도 없이 바로 정권을 꾸리다 보니 사전에 철저한 인사검증이 부족할 수는 있다. 하지만 드러난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는 또 다른 차원의 일이다. 그렇다면 대통령의 원칙은 어디까지 유연성을 가질 수 있는가.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1993년 2월 25일 취임한 YS는 신한국 창조를 기치로 내걸고 쾌도난마의 개혁을 추진했다. 그런데 첫 조각부터 문제가 발생했다. 박희태 법무, 허재영 건설, 박양실 보사부 장관과 김상철 서울시장이 임명(당시에는 인사청문회가 없었다) 직후 자녀의 대학 편법입학, 부동산투기, 그린벨트 훼손 등의 의혹이 불거졌다. YS는 과감했다. 임명한 지 일주일도 채 안 됐지만 해당 장관들을 바로 경질했다. 후일 YS는 그의 회고록에서 "국민에게 진정한 개혁을 약속한 지도자라면, 그가 가장 먼저 마주쳐야 하는 일은 스스로가 제시한 개혁의 거울 위에 자신을 비추어보아야 한다"고 당시를 술회했다. YS의 그런 과감한 결단이 이후 하나회 척결을 필두로 개혁의 드라이브를 거는 원동력이 되었다.
만약 YS가 머뭇거렸더라면 부패와의 전쟁, 공직자재산공개 그리고 금융실명제 전격 도입, 역사바로세우기라는 경천동지할 개혁이 가능했을까. 아마 어려웠을 것이다. 당장 개혁에 저항하는 쪽에서 강하게 반발하고 나왔을 것이다. 그러면 그 저항세력과 지루한 줄다리기를 하면서 개혁의 모멘텀을 잃기 십상이었을 것이다. 당시 YS는 조국 현 민정수석이 말했던 육참골단(肉斬骨斷·내 살을 내주고 남의 뼈를 끊는다)을 실행에 옮겼던 것이다.
개혁은 혁명보다 어렵다. 혁명은 무력으로 상대방을 간단하게 제압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개혁은 법과 절차에 따라 때로는 상대방을 설득하고 또 때로는 저항을 눌러가면서 진행할 수밖에 없다. 그러자면 개혁을 추진하는 주체가 도덕적으로 더욱 우월해야 한다. 그것도 상대방 즉 개혁을 당하는 쪽에서 인정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우월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인사청문회제도가 도입된 것은 2000년 6월이다. 이후 인사청문회 대상 범위가 점차 늘어가면서 2005년부터는 모든 장관후보자는 인사청문회 대상이다. 청문회 단골 낙마 메뉴인 위장전입, 논문표절, 다운계약서 등이 17년 전인 2000년 이전에는 그렇게 큰 죄의식 없이 관행적으로 행해졌던 것도 어느 정도 사실이다.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26일 이낙연 후보자의 '위장전입'과 관련해 사과했다. 임 실장은 "선거 캠페인과 국정 운영이란 현실의 무게가 기계적으로 같을 수 없다"며 국민의 양해를 구했다. 물론 대통령과 호흡을 맞춰 국정을 끌어갈 훌륭한 인재라면 국민도 한 수 접어줄 수는 있다. 하지만 대통령이 국민에게 약속한 원칙에 관한 부분이라면 대통령이 직접 국민에게 이해를 구하는 것이 정도(正道)가 아니겠는가.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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