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숲길] 길을 가는 방법 /정인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입력 : 2017-05-26 19:31:42
| 본지 19면

경남 김해 한림의 병동농공단지 너머에 문우의 집이 있다. 그 집은 공장이 밀집한 농공단지를 지나 산등성이를 넘으면 깜짝쇼를 하듯 갑자기 나타난다. 도저히 동네가 있을 것 같지 않은 곳에 자리 잡은 집은 사람을 매혹하는 데가 있었다. 며칠 전, 동료 소설가들과 함께 그곳에 가기 위해 길을 나섰다.

처음 그 집을 찾아갈 때 우리는 몇 번이나 길을 잘못 들었다. 믿었던 내비게이션이 자꾸 엉뚱한 데로 안내해서였다. 그 길은 그만큼 복잡했다. 이번에는 그때 같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염려가 없지는 않았다. 우리가 타고 갈 차에는 내비게이션이 없었고, 셋 다 길치나 다름없었다. 운전자가 기중 나은 것 같았지만, 오십보백보였다. 스마트폰의 길 찾기를 시도해봤지만, 어째 말을 듣지 않았다. 지난번엔 내비게이션이 있어도 그렇게 헤맸는데 괜찮을까? 의구심이 살짝 들었지만 운전자가 프린트해 온 길 안내가 있었고, 이미 가본 길이니 그렇게 염려할 것도 아니다 싶었다.

세 여자의 수다는 경쾌하고 끝이 없었다. 안부와 근황을 묻고, 모처럼 숨통이 트이게 하는 새 대통령의 행보에 대해 한창 얘기를 나눴다. 그러다가 아차 하는 순간, 우리가 빠져나가야 할 길을 가리키는 이정표가 스쳐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우리의 고난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한 번 길을 놓치고 나자 어디서, 어떻게 다시 길을 찾아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이정표는 우리의 생각과 다르게 적재적소에 있지 않았다. 도움이 필요할 때 나타나지 않아 불안감을 가중하거나 너무 갑자기 나타나 이미 지나친 후였다. 정작 갈림길에선 이정표가 없어 어느 쪽이 우리가 가야 할 길인지 헷갈리기 일쑤였다. 도대체 우리에게 도움을 주는 이정표가 몇 없었다. 예전에도 이정표의 문제점을 생각한 적이 있었지만, 코앞에 닥치자 그 심각성이 더욱 절실하게 다가왔다.

차를 세우고 길을 물어보기도 여러 번이었다. 고맙게도 사람들은 친절하고 자상했다. 우리는 그들이 시키는 대로 논길을 따라가기도 하고, 굴다리를 지나가기도 하고, 좌회전 우회전을 되풀이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어찌 된 셈인지 가다 보면 처음 그 자리, 그 근처에 와 있었다. 자동차전용도로를 타야 하는데 아무리 애를 써도 그것은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다. 꼭 뭔가에 홀린 것만 같았다. 아니면 사람들이 다 한통속이 되어 내비게이션도 없이 길을 나선 우리를 조롱하고 있는 것 같았다.

번번이 망연자실해서 사방을 둘러보면 우리가 가기를 원하는 자동차전용도로가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곳에 길게 뻗어 있었다. 눈앞에 빤히 보이는 그 길을 찾아가는 것이 그토록 힘들다는 것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도 길은, 결국 길 위에 있었다. 몇 번이나 돌고 돌다가 잘못 들어간 어느 공장 마당에서 만난 아저씨가 결정적으로 도움을 주었다. 그는 우리의 목적지를 몇 번이나 정확하게 되물었다. 그리고는 밖으로 나와 길을 가리켜가며 상세하게 설명해주었다. 우리는 마침내 찾았다. 가서 보니 이미 한 번 지나쳐온 길이었다. 자동차전용도로란 안내판도 버젓이 서 있었다. 그것은 한쪽에서만 잘 보이게 서 있었다. 반대편에서도 잘 보였다면 우리는 좀 더 쉽게 길을 찾았을 게 분명했다. 처음에 그 표지판만 포착했다면 하지 않아도 좋았을 시간 낭비를 했다 싶으니 어이없고 허탈하기까지 했다.

그날, 우리가 길 위에서 그토록 헤맨 데는 여러 가지 요인이 복합되어 있었다. 적재적소에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이정표도 문제지만 내비게이션에 너무 익숙해져 버린 우리의 감각도 문제였다. 셋 중에서 그나마 길에 대한 감각을 유지하고 있는 운전자가 아니었다면 길 찾기는 더 험난했을 터였다. 그녀의 감각은 내비게이션을 사용하지 않아 살아남은 것일 수 있었다. 나도 길치이긴 하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이젠 촉수를 잃어버린 달팽이처럼 내비게이션 없이는 길을 나서기가 두려웠다. 어디를 가든 내비게이션부터 작동하고 보는 습관 때문에 길에 대한 감각이 점점 더 퇴화하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거기에 그날은 또 다른 문제가 내포되어 있었다.

그날, 우리는 여러 사람에게 길을 물었지만 제대로 된 도움을 준 사람은 마지막 사람이었다. 그는 몇 번이나 우리의 목적지를 확인했고, 우리는 마지막이란 심정으로 그의 말에 열심히 귀를 기울였다. 그러자 길이 보였다. 결국 소통의 문제였다. 그 이전엔 길을 가르쳐주는 사람이 여러 갈래로 나 있는 길 중 하나를 가리킬 때, 우리는 그가 가리키는 길을 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내가 가고 싶은 길을 보고 있었다. 길을 가르쳐주는 사람들도 우리가 묻는 말 속에서 자신이 답하기에 유리한 부분만을 포착하여 답한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우리가 진작, 마지막에 만났던 그 길잡이처럼 상대방의 말을 잘 들으려는 사람을 만나고, 우리도 좀 더 정확하게 귀담아들을 노력을 했다면 그렇게 오랫동안 헤매지 않았어도 좋았을 것이다. 사람이 하는 모든 일은 진정한 소통만이 최선의 길인 것이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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