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이 피의자 신분으로 재판정에 선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전직 대통령으로서는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에 이어 세 번째라고는 하지만 임기 중 탄핵에 이어 재판까지 받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죄의 유무는 법정에서 가려지겠지만 전직 대통령이 '수인번호 503'으로 전락하고 전, 노 두 전직 대통령과 똑같이 '서울중앙지법 417호' 법정에 섰다는 자체가 비극적이다. 직업을 묻는 질문에 '무직입니다' 하고 대답하는 모습에는 안쓰러움을 금할 길이 없다.

법원은 사건의 조속한 마무리를 위해 가능하면 신속하게 재판을 진행해 주었으면 한다. 시간이 오래 지연되는 것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법원이 박근혜, 최순실 사건 재판을 병합해 진행하는 데다 주 2회 재판을 하기로 한 것은 이를 감안한 결정으로 받아들여진다.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재판은 1심이 6개월, 대법원까지 14개월이 걸렸다. 이번 재판 역시 검찰이 제시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혐의만 18가지에 달해 서두른다 해도 1년은 족히 걸릴 듯하다.

물론 이번 재판은 이전의 전직 대통령 재판과는 상당히 다르다. 12·12쿠데타와 5·18사태, 부정축재라는 대형 범죄는 너무나 뚜렷한 것이었다. 1심 형량이 사형과 징역 22년6월인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반면 박 전 대통령의 최대 쟁점인 뇌물죄와 관련한 돈의 대가성, 부정청탁과 공모 여부는 다툼의 여지가 없지 않다. 헌법 위반만을 따지는 헌재의 탄핵 결정과는 또 다른 차원이다. 첫 재판에서 박 전 대통령 측이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으니 이를 밝히는 것은 검찰의 몫이다.

결과야 어찌 됐든 전직 대통령이 초라한 모습으로 법정에 서는 것 자체가 국민적 수치다. 다시는 이런 일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대통령의 권력 행사에 대한 범위를 확실하게 정할 필요가 있다. 개헌을 앞두고 있으니 헌법에서부터 보다 명확하게 규정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헌법에 규정하기 힘든 부분은 따로 법령을 만드는 것도 검토해 봐야 한다. 권한 행사의 세세한 규정이 있어야 오늘과 같은 비극을 피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수치의 역사를 막을 수 있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