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지진이 잦은 일본이나 미국 서부와 같은 판 경계 지역과는 달리 비교적 안정된 판 내부에 위치해 큰 지진이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인식됐다. 그러나 지난해 7월 5일 울산 동편 52㎞ 해역에서의 규모 5.0 지진 그리고 9월 12일 경주시 양산단층대를 따라 발생한 규모 5.1의 전진과 이은 5.8 본진은 우리나라가 지진 안전지대가 아님을 알려주었다.

경주와 울산은 원자력시설, 석유화학단지와 같은 위험 시설물들이 몰려 있고, 부산과도 가까워 더 큰 지진이 발생한다면 피해는 대재앙이 될 수 있다. 이곳 지진의 특성을 정확히 이해하고 대규모 지진에 대한 중장기적인 대비책을 수립하는 것은 국가의 주요 과제이다.

과학자들은 지진의 발생 원인을 밝히기 위해 지각에 가해지는 힘의 원인이 되는 판 구조 환경을 이해하고자 하며, 과거 대지진의 규모와 주기를 알아내기 위해 관측지진과 역사지진 자료를 수집하고 활성단층을 연구한다. 우리나라의 지진관측은 1905년 인천의 조선총독부에 기계식 지진계 한 대가 설치되면서 시작되었으며, 1963년 서울에 세계표준지진계가 설치된 이후 1978년에 전자식 계기지진 관측이 시작되었다.

1978년 이후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총 지진은 2000회 이상이며 규모 3.0 이상의 지진은 매년 5~15회 발생했다. 그런데 최근 수년 동안 지진 발생 횟수가 급증하는 추세다. 시설물에 피해를 줄 수 있는 5.0 이상의 지진은 총 9회 발생했으며, 지난해 경주 지진은 우리나라 전자식 지진 관측 사상 최대 규모이다.

1905년 이후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지진 중 규모가 가장 큰 지진은 1952년 3월 19일 평안남도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러시아 과학자에 의해 규모 6.3으로 보고된 바 있다. 6·25전쟁 중 발생해 피해 기록은 없으나, 이번 경주 지진보다 10배 정도 큰 에너지의 지진으로 상당히 파괴력이 높았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지진은 삼국사기, 고려사, 조선왕조실록, 장계 등의 역사서에 1900회 이상의 피해 사례로 기록돼 있다. 대표적으로 779년(혜공왕 15년) 경주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많은 가옥이 파괴되고 100여 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기록이 있다. 15~18세기 우리나라에는 지진활동이 매우 활발하여 1455년(단종 2년) 지진으로 남부 지역의 가옥이 무너져 많은 사람이 사망하였다는 기록과 1643년(인조 21년) 울산 지진으로 땅이 갈라지고 물이 용솟음치고 대구, 김해, 영덕 등지의 봉화대 성가퀴가 무너진 기록이 있다. 이들 지진을 오늘날 지진 세기 척도인 리히터 규모로 환산하면 모두 최소 규모 6.5 이상이며 일부 학자는 7.0 이상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우리나라 대지진의 활동 주기는 약 500년으로 지진 다발지역에 비해 매우 길지만, 규모 6.5 이상의 지진이 17세기 이후로 현재까지 약 400년 동안 발생한 적이 없어 역설적으로 향후 우리나라에 대지진 발생 가능성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학계는 포항-경주-울산 지역에 과거 큰 규모의 지진 발생 빈도수가 높아 우리나라 남동부가 지진에 가장 취약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 함께 남동부 여러 곳에 최근 지질시대 동안 대규모 지진을 발생시킨 활성단층이 다수 존재함을 보고했다. 대표적으로 포항시 청하면에서 약 2200년 전에 활동한 대규모 활성단층이 발견되었으며, 경주시 암곡동에서 땅을 17m 수직 상승시킨 단층이 그리고 경주와 울산을 잇는 7번 국도 인근에는 규모 6.5 이상의 지진을 발생시킨 다수의 활성단층이 분포하고 있음이 보고되었다.

우리나라의 계기지진, 역사지진 그리고 활성단층에 관한 과학적 자료들은 우리의 바람과 달리 육상 또는 인근 해역에서 규모 7.0의 지진도 발생할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이러한 대지진은 우리 조상들이 17세기에 마지막으로 겪어본 것으로 지금 사람들에게는 잊힌 지진이다.

9·12 경주 지진 이후 국민 관심이 고조되면서 정부 부처에서는 대비책을 마련하고자 어느 때보다 부산한 모습이다. 새 정부의 부산시 지역공약에는 동남권을 위한 지진연구센터도 세워준다고 한다. 그러나 9·12 지진도 이르면 몇 년 후에는 17세기 그 지진과 같이 잊힐 수도 있다. 과거는 언젠가는 반복됨을 명심하고 장기적 계획에 따라 지금 우리가 지진 대비에 꾸준히 노력한다면 미래 세대의 피해는 분명히 최소화될 수 있다.

부산대 지질환경과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