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가 출범했다. 며칠 지나지 않았지만 달라진 대통령에 대한 환영의 댓글이 줄을 잇고 있다. 격한 욕설이 난무하던 곳이라 기이한 풍경처럼 낯설다. 지난 정부에 대한 실망감이 컸기에 새 정부에 대해 거는 기대도 크다. 적폐청산과 그린 정책에 대해서도 궁금해진다. 신임 대통령에 대한 이런저런 소식 위로 지나간 대통령들의 모습이 겹쳐진다.

아득한 세월 저편의 기억 속에는 난생처음 만났던 박정희 대통령이 각인되어 있다. 부산에 오면 해운대의 극동호텔에 묵었기에 해운대 인근 학교 학생들은 태극기를 흔들어야 했다. 자동차의 운행이 느렸던 덕분에 나는 마르고 왜소해 보였던 박정희 대통령을 한동안 바라볼 수 있었다. 그때는 말라깽이 노인이라는 느낌 외에는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선생님을 비롯한 주위의 많은 사람이 그의 업적을 기리고만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로부터 육 년 남짓한 시간 뒤에 그는 생을 마감했다. 그 이후 나타난 전두환 대통령에 대해서는 외국인들조차 긴 한숨을 내쉰다. 한국의 백담사가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데, 바빠서 가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그곳을 어찌하여 범죄자에게 휴가 주듯 허락하고 그의 죄에 대한 처벌을 하지 않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고. 그는 지금도 내게 이해 불가의 존재다.

1987년 노사분규의 회오리가 지나고 노태우 대통령 다음으로 당선되었던 김영삼 대통령은 사정의 칼날을 휘두르며 칼국수까지 먹었기에 집권 초기 90% 이상의 지지를 받았지만 국가 부도 사태로 마감했다. 그 후 김대중  대통령 때는 환란의 위기를 극복하느라 경황이 없었지만, IMF사태의 회오리바람 속에서 수많은 기업이 팔려나갔다. 일만 명의 직원 중에서 칠천 명이 해고되는 곳도 있었다. 30대 재벌 중 반이 도산했다. 연쇄 부도의 충격으로 수많은 가장이 자살했고 식물인간이 되었다. 뒤를 이은 노무현 대통령 역시 다각도의 노력을 통해 변화의 발판을 마련했지만 스스로 생을 마감하여 비극적 죽음으로 충격을 주었다.

이명박 정권은 천문학적인 재화를 4대 강 죽이는 데에 들였다. 앞선 김대중 노무현 정권 때에 적극적으로 시행했던 신재생에너지 지원 정책들은 돈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폐기 처분했다. 쌍둥이 정권이라 불리며 뒤를 이은 박근혜 대통령 역시 그린 정책에 대한 대안은 전무했다. 그러나 전 국민으로 하여금 분노의 촛불을 들게 했으니 결과적으로 어이없는 대화합만은 이루게 했다.

새 정부는 일자리 마련을 위한 실천 방안도 발표했고, 미세먼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과 원전에 대해서도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지난 정부의 대변자들은 비판을 위한 비판만 하고 있다. 적절한 비판은 필요하지만 지금은 자기 잘못에 대한 반성이 먼저여야 한다. 며칠 전까지 이어지던 선거판의 모습을 제대로 성찰한다면 적폐청산의 대상이 누구인지는 명확해지기 때문이다.

선거 기간 내내 우리는 네거티브 전략에 사력을 다하는 못난이들만 보아야 했다. 유권자들의 소망은 대안 없는 그들을 보지 않는 것이다. TV 토론에서도 고개가 끄덕여질 참신한 공약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 하나 없이 서로를 비난하거나 무지한 수준의 실망스러운 모습만을 보여주었다. 선거가 끝나기만 하면 모든 잘못을 덮어버리는 우리 안의 환부 또한 제대로 도려내야 잘못이 되풀이되지 않고 진정한 의미의 화합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새 대통령은 신재생 에너지 분야의 성장을 위해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앞선 두 정부는 폐기하다시피 했던 분야이다. 대학에서는 신재생에너지 학과들이 사라져야만 했다. 국가의 백년대계가 교육정책인 것처럼 지구를 살리고 우리의 생명을 지켜주는 환경정책 또한 정권에 따라 부침을 해서는 안 되는 사안들이다. 물론 우리는 스위스처럼 인구도 적지 않고 환경도 그들과 달라서 비용이 더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4대 강 죽이는 일에 퍼부은 돈에 비하면 걱정할 수준이 아니다.

어언 삼십 년 전, 우리 밀 살리기 운동 본부가 출범했을 때 제일 먼저 달려가 주주가 되었던 것은 밀의 뛰어난 공기 정화 능력 때문이었다. 밀은 자생력이 좋아 어디서든 경작이 쉽다. 수입 밀은 방부제 범벅이어서 치료 약을 먹을 때 같이 먹지 못할 수준이다. 우리의 몸도 살리고 공기 정화에도 기여할 밀의 경작을 도심에서도 시행해보면 어떨까 싶은 것이 공기 정화에 대한 나의 소견이기도 하다. 그러나 아직 우리 밀 살리기 운동은 미미한 수준이고 우리 밀에 대한 인식도 특별하게 달라지지 않고 있기에 안타깝다. 병든 지구를 살릴 방책들은 근시안적인 계획으로는 실현 불가능하다.

5년의 권력이지만 50년, 아니 그 이상의 미래를 책임질 잘 짜인 정책들이 필요한 만큼 새 정부에 거는 우리의 기대도 예전과는 달라졌다. 4차 산업 혁명으로 수백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지구촌도 위기에 처해 있지만 우리의 자식들을 위해 그린 정책만은 성공하기를 간절히 기원해본다.

소설가·동의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