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을 두고 '계절의 여왕'이라 한다. 내가 살고 있는 강원도 속초의 작은 마당에도 이 5월의 진가는 확실하다. 위도는 높지만 온화한 기후 덕에 속초 집 마당엔 이미 3월에 크로코스 다프네 수선화가 지나갔고, 4월엔 튤립과 무스카리가 꽃을 피웠고, 이제는 여름이 절정인 노루오줌(아스텔베) 억새 스크령 애기범부채(크로코스미아) 톱풀들이 키를 키우며 하루가 다르게 성장 중이다.

정원에 풀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자생종 관목, 히어리가 노란 꽃을 피운 뒤로 정원의 나무들도 한창이다. 3년 전 심은 보리수나무에 어김없이 꽃이 만개했고, 직박구리가 날아오는 산딸나무엔 꽃망울이 잡히고, 단풍나무는 달콤한 수액을 먹으러 온 개미들 행렬이 줄을 잇는다.

우리는 간단히 식물이라고 말하지만, 각각의 식물은 그 모양과 특징, 생존 방식이 아주 다르다. 주목은 1000년을 산다고 전해지는 나무다. 1000년을 버티며 살아야 하니 나무의 기둥부터가 다르다. 크는 속도도 다른 나무에 비해 더디다. 맺은 열매는 빨간 과즙에 감싸져 있는데 양이 많지도 않고, 씨앗의 껍질은 쉽게 깨지지도 않는다.

새가 먹어 장 속의 소화효소에 묻힌 채 배설물과 함께 땅에 떨어져야 발아가 가능하다. 그런가 하면 원하지도 않는데 미리 와 자리를 잡는 잡초들은 잎을 내자마자 꽃을 피우고, 눈에 보이지 않는 씨앗을 수천, 수만으로 흩뿌린다. 또 같은 나무라고 해도 키가 큰 나무도 있고 작은 나무도 있다. 나무가 키를 키우는 것은 다른 식물보다 더 많이 햇볕을 받아 영양분을 만들기 위함이다. 하지만 이 큰 나무 밑 햇볕도 잘 들지 않는 곳에서도 강건하게 살아가는 관목과 풀들도 있다.

우리는 과학 시간에 이 지구 속 모든 생명체의 삶은 '약육강식'이라고 배웠다. 약한 것은 강한 것에게 잡아 먹힌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 말은 맞기도 하지만, 틀리기도 하다. 말대로 해석을 하자면 이 지구는 약한 것은 다 사라지고 강한 것만 남아 있어야 하는데 여전히 이 지구는 약자도 강자도 여전히 함께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덩치가 크다고 삶이 유리한 것은 아니다. 덩치를 키우는 식물은 그만큼 많은 영양분이 필요하기 때문에 땅밑 수십 미터까지 뿌리를 내려야 한다. 이게 잘 안 되면 수십 년 커오던 나무도 바람에 나무 전체가 뽑혀 나간다. 태풍이 지나간 후에 우리는 아름드리 큰 나무가 뽑혀 있는 건 많이 보지만 땅에 붙어서 작은 키로 살아가는 풀들이 뽑히는 걸 본 적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덩치를 키우는 게 한편으로는 유리하지만, 그만큼 위험을 감수하고 있다는 얘기가 되는 셈이다.

이끼는 45억 년 전 지구가 태어난 후 가장 먼저 출현한 생명체다. 이 생명체는 꽃도 없이 포자를 날려 번식하는 원시적인 방식을 고수하는 중이다. 진화론 입장에서 보면 진화가 안 된 뒤처진 생명체이지만, 다른 진화된 생명체가 출현했다 멸종되는 일을 끄떡없이 지켜봤다. 진화를 하지 않았기에 오히려 생존할 수 있었다.

식물의 세계만이 아니다. 물속에 사는 포유류인 고래는 평생 서너 마리의 새끼를 낳는다. 그 대신 배 속에서 거의 다 키워서 출산을 하기 때문에 한 마리만 낳아도 생존 확률이 높다. 하지만 대구라는 물고기는 한 번에 수억 개의 알을 낳는다. 대구가 그 많은 알을 낳는 이유는 그만큼 생존율이 높지 않기 때문이다. 적게 낳지만, 생존율을 높인 고래나 생존율이 낮기에 많이 낳는 방식을 택한 대구나 모두 강자도 약자도 아닌 이 지구의 생존자들일 뿐이다.

다른 예도 있다. 식물은 곤충에게 일방적으로 먹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특정 곤충의 개체 수가 증가하면 자신의 몸에 독을 품어 그다음 해 그 곤충의 수를 줄인다. 결론적으로 이 지구엔 절대 강자도 없고, 절대 약자도 없다. 덩치가 크고 힘이 세다고 유리하고, 작고 미비하다고 피해자가 되는 것도 아닌 셈이다.

어제는 어린이날이었다. 어린이는 우리의 미래라고 말하지만, 어른들이 하는 행동에는 이 미래의 싹을 죽이는 말과 행동이 무의식적으로 참 많다. 키가 작으니 키를 더 키우자고 운동을 시키는 엄마의 극성에 아이들은 자신의 키 작음이 열등감임을 알게 된다. 코를 더 높이면 예뻐질 것이라는 말은 작은 코가 삶에 불리하다는 선입견을 남기고, 암기력이 달리니 머리를 총명하게 하는 약을 먹자고 하면 자신의 머리 나쁨을 치명적 약점으로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자연 속의 많은 생명체가 그렇듯이 우리의 삶도 절대적으로 유리한 것도 불리한 것도 없다. 지금의 우리가 생각하는 유리하고 진화됐다고 생각하는 장점이 꼭 장점이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자연의 모든 생명체가 강자와 약자의 관계로 얽혀 있는 것이 아니라 공생의 관계이듯 우리 역시도 서로 다르게 더불어 살아가는 공생의 삶일 뿐이다!

작가·가든디자이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