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분권국가'와 '지식분권국가'. 19대 대통령 선거 유력 주자인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와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가 지난달 27일 지방분권개헌국민회의(국민회의)로부터 받은 액자에 적힌 글귀다.

이날 두 후보는 각각 서울과 대구에서 지방분권개헌을 2018년 6월 지방선거 때까지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냥 약속이 아니다. 국민회의와 지방분권개헌 국민협약 체결식을 했다. 역대 선거에서 공수표가 된 분권 공약을 감안해 도장을 쾅 찍은 셈이니 그 의미가 유별나다.

지방분권개헌을 주창해온 국민회의 내력이 무게감을 더한다. 지난해 하반기 지방분권개헌 100만명 서명운동에 이어 지난 2월 8일 국회에서 출범식을 열고 '대한민국은 지방분권국가'임을 명시한 지방분권형 헌법 개정안을 선보였다. 국민회의에는 지방분권개헌국민행동, 지방분권전국연대,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전국시군자치구의회의장협의회, 전국시도의회의장협의회, 한국지역언론인클럽 등이 참여했다.

오는 9일 선거에서 새 대통령 물망에 오른 두 후보가 지방분권개헌을 약속하고, 중앙집권적 통치체제를 민주적 자치분권체제로 바꿔 대통령과 국회, 중앙과 지방의 균형을 꾀하는 개헌안을 전국의 내로라하는 분권 단체들이 만들었으니 절호의 기회다. 여기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지방분권개헌에 대한 시대적 요구이다. 최순실 게이트는 제왕적 대통령제의 한계를 드러낸 '87년 체제' 전환의 불쏘시개가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국민협약의 실현 가능성은 미지수다. 개헌안을 국민투표에 부치려면 적어도 10개월이 걸린다. 새 대통령은 취임 한 달가량 만에 이 작업에 들어가야 한다.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여소야대가 불가피한 국회 지형을 감안하면 국무총리와 장관 인선에도 힘이 딸릴 상황일 터. 탄핵 이후 산적한 현안에다 공약 실천의 우선순위를 가리는 일도 만만찮다. 게다가 국회에서 논의되는 개헌의 핵심은 권력 분점, 대통령의 힘을 국회 쪽으로 옮겨오자는 것에 맞춰져 있다.

그동안 지적되어온 반분권 카르텔의 작동으로 '지방분권 도돌이표'가 재현될 수 있다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는 이유다. 유감스럽게도 이 카르텔에서 첫손에 꼽히는 것이 대통령이다. 그 누구와도 나눌 수 없는 게 권력이라고 했던가. 새 대통령은 이 권력 독점의 속성을 이겨내야 한다. 결국 대통령의 의지로 귀결된다.

프랑스의 예를 보자. 드골 대통령이 뿌린 지방분권의 씨앗은 좌파인 미테랑 정권에서 꽃을 피웠고 마침내 우파인 시라크 정권에서 열매를 맺었다. 지방분권국가임을 당당히 밝힌 헌법 개정이다. 지방분권이 정권 변화와 관계없이 국가경쟁력 강화 차원에서 이뤄졌다. 과연 새 대통령은 이런 강단을 발휘할 수 있을까.

국회의원은 더 고약한 구석이 있다. 국회의원이 지방자치단체나 지방의회를 마음대로 주무르려는 욕심을 버리기 전에는 지방분권이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다. 입법권이 그들의 손아귀에 있다. 관련 법안이 국회 상임위원회에 상정되면 대부분 하세월이다. 국회의원들이 지방분권에 소극적이거나 관심이 없다는 방증이다. 일본이 지방분권일괄법을 통해 지방분권 개혁을 추진할 때 가장 큰 장벽은 중앙정부 공무원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국회에서 지방분권을 위한 합리적인 진전의 시도가 가로막힌 예가 한둘이 아니다.

중앙정부야 두말하면 잔소리다. 말로는 '지방자치단체 어느 곳에서도 구체적으로 뭘 해 달라' 요구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실권을 틀어쥐고 실무만 내맡기는 행태가 지금까지 관행 아닌가.

우리나라는 1987년 헌법 개정 이후 지방자치제도를 부활했다. 현행 헌법이 지방분권의 열망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는 까닭이다. 관련 조항은 제117조와 제118조에서야 찾을 수 있다. 117조는 '지방자치단체는 주민의 복리에 관한 사무를 처리하고 재산을 관리하며, 법령의 범위 안에서 자치에 관한 규정을 제정할 수 있다'는 1항과 '지방자치단체의 종류는 법률로 정한다'는 2항, 118조는 1항 '지방자치단체에 의회를 둔다'와 2항 '지방의회의 조직·권한·의원선거와 지방자치단체의 장의 선임 방법 기타 지방자치 단체의 조직과 운영에 관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로 이뤄진다.

여기에 입법·행정·재정·사법권을 더해 지방분권국가를 천명하고 실천하자는 것이 지방분권개헌의 핵심이다. 이를 통해 저출산·고령화, 양극화, 재난·안전, 일자리 등 현안을 해결하고 지방의 특색을 살려 세계와 경쟁하자는 취지다. 그러니 지방분권개헌은 대통령 선거와 함께 새롭게 시작해야 할 운동이다. 헌법을 바꾼다고 지방자치의 한계가 한꺼번에 해결될 수 있느냐고. 그 벽에 막혀 주저앉았던 많은 문제를 하나씩 해결하기 위한 가장 적극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이다. 지방분권개헌이 그만큼 절박하다.

논설위원 jsdo@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