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늦은 오후에 부산 해운대구 청사포의 바닷가 식당에 들렀다. 저녁 식사 시간치고는 좀 이른 편이어서인지 식당은 한산했다. 메뉴판은 별도로 없었고 벽면에 대여섯 가지의 메뉴와 요금을 적은 액자가 걸려 있었다. 부산 어느 곳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눈에 익은 풍경이었다.
평상복 차림을 한 중년의 주인아주머니에게 주문을 하고 기다리는 동안 직업의식이 발동하였는지 요즘 날씨가 좋은데 손님이 많이 오시는지 물어보았다. 이에 주인아주머니는 "주말에는 일손이 모자랄 만큼 손님이 많다"고 전했다. 외국인들도 식당을 찾느냐는 물음에는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대만 등에서 여행온 외국인 손님도 많이 온다"고 말했다. 그런데 식당에는 외국어는 단 한 글자도 보이지 않아서 여행사 단체 손님이냐는 질문을 던졌다. 이에 삼삼오오 개별적으로 오는 손님이라는 답변이 나왔다.
그렇다면 개별적으로 오는 외국인 손님들로부터 어떻게 주문받는지 궁금했다. 주인아주머니는 식당 한쪽을 가르키며 사진도 있고 스마트폰의 외국어 통·번역 앱도 있어 별로 불편함이 없다고 하였다. 이후 주문한 메뉴가 나왔지만, 음식을 먹는 내내 한국관광의 현장을 목격하며 우리나라 관광서비스업 수준의 글로벌화에 대한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지난해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위협에 대응하여 우리 정부가 미군의 고고도 미사일방어 체계(THAAD·사드) 국내 배치를 발표한 이후 한국을 찾는 중국 관광객이 점진적으로 감소하다, 지난 3월 중순 중국 정부의 여행사를 통한 단체 방한 여행 전면금지 이후에는 감소 폭이 더 크게 늘어나고 있다.
결국 중국 관광객을 취급하던 많은 여행사가 동남아시아 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여행업계와 일선 지방자치단체들은 일본과 동남아 관광객을 유치하려고 이들 지역에 대한 판촉활동에 전력을 다하고 있는 분위기다.
이처럼 최근 불거진 외국인 관광시장의 다변화 요구는 이미 오래전부터 주장되어온 것이지 새삼스러운 내용은 아니다. 관광시장 다변화의 필요성은 아주 중요하며 우리 부산도 예외가 될 수 없다.
다행스럽게도 부산을 찾는 일본과 동남아 관광객의 비중이 전국 평균과 비교하면 큰 편이다. 지난해 한국을 방문한 중국인 관광객은 802만 명으로 전체 외국인 방문객의 47%를 차지했다. 그런데 우리 부산을 찾은 중국인 관광객의 비중은 32%로 집계됐다. 결국 일본과 동남아 관광객이 상대적으로 부산을 많이 찾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부산시와 부산의 관광업계가 관광시장 다변화를 위하여 한 발 앞서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특정 대형시장에 집중하다 보면 관광서비스의 업종이나 수준이 이 한 시장에 치우치기 마련이어서 다른 국가의 관광객에게는 불편함을 초래하게 된다. 날로 국제화되어가고 있는 각종 사회현상에 비추어 볼 때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이다.
최근에는 부산 소재 호텔이 이슬람 기도실을 마련하였고, 부산시와 자치단체에서도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하루에 5번씩 기도하는 이슬람권 관광객은 기도실이 설치되어 있는 곳을 찾게 마련이다. 17억 명에 달하는 거대한 시장인 이슬람권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서는 기도실 설치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러나 관광시장의 다변화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국내 여행시장이라 할 수 있다. 지난해 부산을 찾는 국내 여행객은 1100만 명으로 외국인 관광객보다 거의 4배가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여행의 형태는 국내외 저비용 항공사의 적극적인 노선확장과 스마트폰의 보편화로 여행사에서 조직하는 단체여행에서 개별여행으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이들 개별관광객은 주로 중소 규모의 자영업자들이 운영하는 업소에서 많이 상대하고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 경제의 대외 의존도는 80.8%로서 여느 선진국가 비교해 높은 편이다. 보통 대외 의존도가 높은 국가일수록 국제경기에 따라 수출 등 실물경제와 금융시장이 크게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관광산업도 마찬가지다. 소득과 환율에 따라 여행의 횟수나 관광목적지 선정이 크게 영향을 받는다. 세계 주요 관광선진국의 국내 관광시장의 비중은 일본 95%, 미국 88%, 프랑스 70%에 비해 우리나라는 60% 수준이다. 외래 관광객이 줄어들면 이들 중소 자영업자들은 심각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우리나라의 생활문화수준도 세계 11위의 경제 규모만큼 국제화되어 있는지 살펴볼 필요도 있다. 내국인이 여행하기 편한 곳은 외국인도 여행하기에 편리하다는 의미다. 여행은 생활 일부이자 필수가 되어가고 있는 현실을 누구나 받아들인다. 이제는 지나치게 중국시장에 의존해온 관행에서 벗어날 때가 됐다. 동서에 대형 관광시장과 인접해 있는 우리나라의 관광산업은 앞으로도 계속 성장할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고 싶다.
부산관광공사 사장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