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 이은권(대전 중구) 의원이 대전 한국원자력연구원의 사용후핵연료를 고리 원자력발전소로 돌려보내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이 원자력안전법 일부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연구를 목적으로 연구원에 보관 중인 방사성 물질은 총리령만 있으면 언제든지 원자로 운영자에게 반환이 가능해진다. 이 의원은 여러 가지 연구가 끝난 뒤에도 핵연료에 대한 반환이 불가능하다면 원전 안전성 향상을 위한 각종 실험이 어려워진다는 점 등을 법안 발의 배경으로 설명했다.

하지만 이 의원의 이 같은 발언은 아무리 살펴봐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사용후핵연료의 소유권은 전적으로 연구원 측에 있다. 국가기관인 연구원은 고유 업무 수행을 위해 한국수력원자력과 사전 협의를 거쳐 고리와 전남 영광, 경북 울진원전 등에서 사용후핵연료를 가져갔다. 그런데도 단지 연구가 종료됐다는 이유로 방사성 물질을 고리원전 등으로 반환해야 한다는 주장은 지독한 지역이기주의에 지나지 않는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실험을 거치면서 손상된 사용후핵연료를 다시 옮기는 도중 치명적인 위험이 생길 수도 있다는 점이다. 연구원은 안전에 문제가 없다고 하지만 연구가 끝난 사용후핵연료를 운반할 수 있는 기술과 용기는 아직 개발되지 않은 상태다. 이는 방사성 물질의 이동은 될 수 있는 한 최소화해야 한다는 원칙에도 어긋난다. 한수원에 따르면 고리원전에서 연구원으로 이송된 사용후핵연료 1699개 가운데 55개는 손상된 것으로 파악됐다.

사용후핵연료 처리는 부산·대전만의 문제가 아니라 온 국민의 안전과 직결되는 중요한 사안이다. 관련 법안이 즉흥적으로 만들어져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법안 발의에 앞서 사용후핵연료 처리에 대한 폭넓은 국민 의견수렴이 필요하며 이를 바탕으로 정책이 결정돼야 한다. 우리 동네만 아니면 방사성 물질을 아무데나 쌓아 놓아도 괜찮다는 건 자칫 양 도시끼리 갈등만 불러올 수 있다. 지역 정치권도 부산시, 시민단체 등과 힘을 합쳐 적극 대응에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