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 경제에 큰 고민을 안겨주고 있는 조선·해운산업 재편과 이와 관련한 구조조정이 지속되면서 정책금융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여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그간 우리 경제가 세계사에 유례없는 발전을 이룩하는 과정에서 정책금융은 기업의 설비 확충, 도로, 발전소 등 대규모 인프라 건설과 수출 지원 등 성장을 위한 전략적 금융지원을 했다. 하지만 IMF 구제금융 한파와 리먼사태 등 반복되는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어려움에 봉착한 기업에 대한 정책금융기관의 구조조정 역할이 눈에 띄게 늘어나 이를 바라보는 시장의 우려를 낳고 있다.
정책금융은 수익을 추구하는 상업금융과 달리 사회적 후생을 극대화하는 목적을 가진다. 정책금융은 시장기능에 맡겨서는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어려운 특정 부문에 대해 금융조건이나 자금의 가용성 면에서 우대해 공급하는 여신이다. 시장의 실패를 보완하거나 시장의 발전을 선도하고, 때로는 시장 안정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우리나라 정책금융의 주된 채널은 산업은행 등 금융 공기업이기 때문에 이들 금융 공기업이 수행하는 여신 업무라고 볼 수도 있다.
좁은 의미에서 정책금융의 필요성은 시장 실패를 보완해 자금 공급의 효율성을 높이는 데 있다. 중소기업 지원의 경우 정보의 비대칭성으로 시장에 맡겨서는 필요 자금이 충분히 공급되지 못한다고 보고, 정책금융이 부족분을 공급해야 한다. 시장선도 기능은 1970년대 중화학산업 지원, 1980년대 이후 첨단산업 육성, 기업의 글로벌 시장 진출 등과 같은 미래 신성장 동력을 찾아 지원하는 것으로, 부족한 재원을 전략적인 관점에서 꼭 필요한 분야에 집중하는 것이다. 넓은 의미의 정책금융 기능으로 시장안정을 포함한다. 대기업 구조조정의 경우 자본시장의 발달 정도가 충분하지 않은 우리 금융시장 상황에서는 정책금융 영역으로 보고 있지만, 자칫 시장 왜곡과 같은 우려가 있어 정책금융의 범주에 포함하는 데 일부 이견도 있다.
이런 필요성에도 정책금융 과다로 인한 상업금융 구축 및 시장마찰 등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주장도 있다. 정책금융이 시장의 자율적 메커니즘을 왜곡하고 민간 부문을 구축함으로써 금융시장의 발전을 저해한다는 것이다. 2010년을 기준으로 우리나라 GDP 대비 정책금융 비중은 8.4%로 미국 0.5%, 영국 0.04%, 독일 1.2%보다 월등히 높다는 것이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는 논거로 제시(홍재근 '외국의 정책금융 운용 현황 및 시사점')되고 있다. 또 2012년 말 기준 국내 32만 개 전체 영리기업에 대한 신용공여 644조 원 중 47%인 302조 원이 금융 공기업에 의한 신용공여로 나타남에 따라 정책금융이 너무 과다하다는 주장이 제기(한국정책금융공사 '국내 금융기관 신용공여 현황')되기도 한다.
영미적 시장경제를 옹호하는 관점에서는 한국의 정책금융이 그 기능적인 면에서나 규모 면에서 너무 과다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각국의 정책금융 양태를 보면 '선별적·사전적 금융정책으로 제도화된 정책 개입'이라는 일반 원칙을 따르고 있지만, 각 경제가 가지고 있는 개별 사정에 따라 기능과 범위에서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유럽과 미국처럼 자본시장이 발달한 국가는 독일의 저축은행 앞 정부보증 폐지, 미국의 Fannie Mae, Freddie Mac 해체 등 정책금융을 최소화하고 정책금융 기능을 최대한 민간으로 이양하고 있다. 같은 선진국이지만, 자본시장 발달 정도가 다른 일본은 GDP 대비 정책금융 비중이 12.5%로 타 선진국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정책금융의 비중이 크다. 우리나라는 근대화 과정에서 자본의 본원적 축적이 미비하고 다른 선진국과 달리 기축통화국에 속하지 않는 등 민간금융시장이 충분히 성숙하지 않았기 때문에 정책금융의 기능과 역할이 커진 것으로 판단된다. 수출산업과 해외 진출을 위한 장기 외화자금 지원은 외화 차입 자체가 어려운 민간 금융기관보다는 국가 신용도를 가진 국책금융기관이 차관 도입 또는 외화채권 발행 등을 통해 그 역할을 맡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단기적이고 안정적인 주주 이익을 우선 추구하는 민간 금융기관이 대기업 구조조정과 같이 장기·연착륙을 도모하는 대규모 구조조정을 끌고 나가는 것을 기대하기는 곤란하다.
하지만 한국적 현실을 감안해 정책금융의 기능과 역할을 인정한다고 할지라도 정책금융의 역할이 지속적으로 확대되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 민간금융과 정책금융의 조화를 통한 금융시장의 장기적 발전을 위해서는 시장을 보완하되 민간금융의 성장을 저해하지 않고, 선도적 역할을 하되 시장과의 마찰을 최소화하는 정책금융의 균형 있는 운영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정책금융기관이 궂은일을 마다치 않지만 열에 하나를 잘못하더라도 큰 질책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은 국가경제의 지속성장에 금융 인프라를 슬기롭게 운용해야 한다는 국민적 기대가 그만큼 엄중하기 때문이다.
해양종합금융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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