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후 뜬금없이 문자가 날아들었다. "여수 관광 끝내고 집에 왔다." 아버지였다. 여행 가자고 딸이 바람잡이를 할 때는 한사코 고개를 내저으시더니 벗님들과 봄맞이에 나섰던 것이다. 바람이 훅 스치기만 해도 감기를 친구로 맞이하는 아버지가 감기가 한창인 어머니를 동행하고 봄맞이를 했단다. 운전을 직접 하신 것이 아니라니 한시름 놓았지만 아버지의 행보는 늘 조마조마하다. 병마가 나드는 횟수가 잦아진 데다 수위도 높아진다. 그만큼 병원에서 그리고 집에서 꼼짝 못 하고 계시는 날들이 늘어간다. 하지만 마나님 눈치 보시느라 투덜대는 자리도 만만치 못하고, 일상에 파묻힌 딸들도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 나들이를 즐기시는 아버지는 답답함이 하늘을 찌를 터다.

이즈음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에서 답답함에 사무친 아버지를 떠올려본다. 그런 아버지는 칼에 찔린 상태로 니혼바시 다리까지 걸어가 기린 조각상에서 죽음을 맞이한 다케아키이다. 기린 조각상은 다케아키가 니혼바시 경찰서에서 도움을 청할 기회조차 마다하고 비틀거리며 향했던 곳이지만, 여기에 주목하는 이는 가가 형사뿐이었다. 가가 형사는 치밀한 관찰력과 추리력에 끈기까지 겸비한 인물로, 게이고 소설을 우뚝 세운 당사자이기도 하다. 코난과 김전일에 비견할 만큼 가가 형사도 수사의 방향과 결과들에 '왜'라는 질문을 던지며 모든 정황을 되짚는다.

그럼에도 독보적인 매력은 집요한 끈기이다. 그는 다케아키의 행적을 되짚고 주변 인물들에게 탐문하며 갔던 길을 걷고 또 걷는다. 끝까지 물고 늘어져 칠복신 순례를 했던 다케아키의 행적을 하나둘씩 밝혀내면서 퍼즐의 조각들을 짜 맞추어간다.

다케아키의 죽음은 갑작스러웠고, 그의 칠복신 순례는 이례적이었다. 중견사원의 평범한 일상 속에 틈입하기 어려운 지점이 바로 칠복신 순례이며, 거기에서 다케아키의 가족들을 새롭게 만나게 된다. 가족들은 헤아리기 힘든 상실감 속에서 정작 그에 대해서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특히 아들 유토의 상실감과 무력감은 남다르다. 유토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지쳐 잠든 모습이 거의 전부였건만, 그런 아버지가 자신을 대신해서 칠복신 순례를 이어갔다는 사실에 뜨악할 수밖에 없다. 유토는 종이학을 색깔별로 백 개씩 접는 수고로움을 마다 않고 동료의 쾌차를 기원하는 간절함을 담아 스이텐구 참배를 해왔다. 중학 시절 수영장사건에 대한 죄책감 때문이었지만, 진실을 대면할 용기와는 별개였다. 진실을 은폐한 선생님과 공모한 친구들 사이의 묵계, 유토는 그 무게를 오롯이 혼자 감당할 뿐 아버지를 비롯한 가족 누구와도 터놓고 얘기하지 못했다. 다케아키 또한 그런 아들을 위해 칠복신 순례를 거듭했건만 대놓고 말을 건네지는 못했다.

아버지의 이름은 유토를 넘어 우리에게 과연 무엇인가. 아버지 또한 자식에 대한 사랑이 지극하지 않을 리 없건만, 친근함의 무게와 거리는 어머니와 사뭇 다르다. 일찍이 라캉은 무의식이 언어로 구조화되어 있으며, 거기에서 '아버지의 이름'을 '어머니의 욕망'과 구별한 바 있다. '어머니의 욕망'은 어린아이가 거울에 비친 모습대로 구성한 상상적 자아 상태로, 긴밀한 관계를 있는 어머니의 욕망을 욕망한 결과물이다. 그들의 상상적 관계는 본질을 벗어난 기만적 환영에 불과하지만, 거의 절대적 유대감을 형성한다. 하지만 '아버지의 이름'이 '어머니의 욕망'에 과격하게 파고든다. 프랑스어로 '이름(nom)'은 '아니오(non)'라는 발음과 똑같은데, 라캉이 말한 '아버지의 이름'은 그런 금지와 법의 기능을 동시에 가진다. 그러니까 '아버지의 이름'은 '어머니의 욕망'을 금지하고 상징적 질서가 지배하는 현실 세계를 대표한다. 그뿐만 아니라 어린아이가 아버지의 법과 권위를 내면화하여 거듭난 주체를 곧추세우는 대타자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버지의 이름'에 놓인 관계 형성의 문제는 녹록지 않다. 고등학생 유토에게 다케아키는 아버지인 동시에 이를 넘어선 현실 세계의 질서이자 법이다. 일상생활만 하더라도 아버지와의 소통은 잠든 아버지를 감히 깨울 수 있는 용기를 전제해야 한다. 그것은 유토에게 은폐된 진실과 묵계의 무게에 비견될 수준이다. 아버지에 대한 불만이 가득해도 쉬쉬하는 가부장적 분위기 또한 유토의 결단을 끊임없이 지연시킨다. 결국 '기린의 날개'에 남겨놓은 메시지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아버지의 사랑을 되새길 뿐이다. "용기를 내라, 진실로부터 도망치지 마라, 자신이 믿는 대로 하라, 라고."

계절이 가파르게 바뀌고 있다. 바람이 휘도는 날이 유난히 많은 봄날, 우리네 가족들도 '아프다'는 신호를 보내야만 돌아보는 관계가 되지 않았는지 의문이다. 여전히 사랑을 표현하는 데 미숙하기에 더욱 그러하다. 세월호 인양과 대선정국에서 요동치는 아버지의 이름, 정의가 온전히 자리매김하는 데 사랑의 힘들도 함께 강건해졌으면 한다.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