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이리도 새롭지 않을까. 며칠 전, 나는 지루한 연극 한 편을 보며 중얼거렸다. 배우들은 열정이 넘쳤지만 연극 자체는 그 열정을 감당하지 못했다. '탐욕'을 소재로 한 이야기는 진부했고, 한 시간 동안 나는 이미 우리나라가 뛰어든 세계 콘텐츠 시장에서 어떻게 버텨낼 것인지에 대한 국가적 프로젝트를 혼자 세우고 혼자 오지랖을 떨었다. 피로해졌다. 왜 내가 연극 한 편을 가지고 이러고 있을까. 새로 나온 건 다 찾아보며 부산을 떠는데도 왜 다들 그저 그렇기만 할까. 문득, 우다다 학교가 떠올랐다.

우다다 학교를 처음 만난 것은 7년 전이었다. 대학시절 내가 활동했던 문예 동아리는 다른 대학과 교류를 자주 가졌는데, 그렇게 만난 타 대학 친구가 우다다 학교의 허정미 선생이었다. 어느 날 문득 그녀는 전화를 걸어와, 자신이 근무하고 있는 대안학교에 글쓰기 선생으로 자원봉사를 와달라고 했다. 어린이 및 청소년을 낯선 외계 생명체쯤으로 여기고 있던 나는 선뜻 그 제안에 응하지 못했다. 7년 전의 나는 누군가에게 글쓰기를 가르치는 일을 업으로 살게 될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던 방구석 외톨이 작가였다. 집 밖은커녕 방 밖으로도 잘 나가지 않고 꾸역꾸역 원고만 쓰던 내가 며칠 고민하다 '자원봉사를 하겠다'고 답을 보낸 것은, 나도 사람 같은 생활을 해봐야겠다는 단순한 생각에서였다.

전교생 50여 명. 자유롭게 과목을 선택할 수 있는 작은 학교. '우리는 다 다르다'라는 뜻을 가진 우다다에서 가진 첫 글쓰기 시간에, 나는 그만 그 반짝반짝한 아이들에게 매료되고 말았다. 학원과 입시에 늘 축 처져있거나 어려움을 극복하겠다는 의지로만 가득찬 제도권 학교 아이들과 달랐다. 아이들은 조그만 일에도 호기심을 반짝였고 서슴없이 질문했다. '그렇게 쓰면 이렇게 쓰는 것과 어떤 점이 달라요?' '글쓰기가 지금 내 삶을 어떻게 바꿔요?' '인물은 어떻게 잘 쓸 수 있어요?' 열대여섯 살쯤의 아이들은 내가 스스로에게도 해본 적 없던 질문들을 서슴없이 쏟아냈고, 나는 아이들에게 답하는 동시에 나 자신에게도 속속 새로운 답을 찾을 수 있었다.

내 손으로 가르친 아이들이 졸업하고 사회에 나가고 또 다른 아이들을 가르치는 동안 대안학교에 대한 내 편견은 투둑툭 소리를 내며 담장 위에서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아이들은 늘 신나게 학교에 와서 스스로 궁금한 것에 대해 배웠다. 졸업한 아이들은 제각기 다른 방식으로 사회에 나갔다. 평범하게 대학에 진학하고 평범하게 취업을 하고 평범하게 여행을 떠났다. 아이들의 공통점은 졸업 이후의 삶도 스스로 선택한다는 점이었다.

좋은 선생님들이 학생을 약하게 만들 것이란 편견 역시 무너졌다. 관심과 사랑을 받은 아이들은 넘어져도 곧 일어나 새로운 계획을 세웠다. 우다다에 7년간 자원봉사하는 동안 아이들에게서 단 한 번도 듣지 못한 말도 있었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어요." 이 말은 내가 저녁마다 운영하는 성인 글쓰기 클래스에서 수시로 듣는 말이었다. 좋아하는 걸 모른다는 건 재미있는 게 뭔지 모른다는 것. 재미있는 게 뭔지 모른다는 건 재미있는 콘텐츠를 생산하는 창작자가 되기도 어렵다는 뜻이다. 자신이 사회에서, 소속된 커뮤니티에서 중요한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자란 사람과 모르고 자란 사람 사이엔 그토록 큰 차이가 있다.

삶을 선택할 폭은 넓어져야 한다. 망하든 흥하든 내 알아서 할 일이고, 어느 날 갑자기 몇억을 벌겠다는 상상초월 프로젝트를 벌이지 않는 다음에야 내 손 뻗을 반경쯤은 자유로운 사회가 건강한 사회다. 그 안에서 인간은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더 새로운 것, 더 더 새롭고 조밀한 것을 찾아 떠날 수 있다. 아침부터 밤까지 학교와 학원에 꼬박 틀어박혀 자란 아이들은 사회화된 아이가 되어 나이를 먹는다. 70살에도 같은 질문을 반복할 순 없다.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가, 그리고 무엇이 재미있는 것인가. 술 먹고 노는 것이야 누구든 좋아하지만 그 일이 콘텐츠가 되기는 어렵다. 취한 정신으로 사회를 견디던 우리 앞에, 맨정신에 뭘 하고 놀 것인지 결정해야 하는 세상이 오고야 말았다. 연극이 끝난 후, 나는 극장 앞에 핀 벚나무에서 우수수 떨어지는 벚꽃 잎을 보며 한참 서 있었다. 꽃놀이야 한때지만 창작은 지속된다. 우리는 무엇을 그만두고 무엇을 지속해야 할 것인가. 그게 뭐든, '지시'없이 선택할 순간이다.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