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를 오가며 눈여겨보던 주택이 또 사라졌다. 튼튼하고 아름답게 지어진 데다 정원에 나무가 많아서 눈여겨보았던 집이다. 그 자리엔 지금 한창 고층건물이 올라가고 있다.

나는 늘 마당이 있는 집을 갖고 싶었다. 예전에 살던 집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었다. 그 집 마당에는 수형이 아름다운 모과나무가 있어 봄이면 사랑스럽기 그지없는 꽃을 피웠다. 못생긴 열매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작고 예쁜 분홍색 꽃이었다. 마당에는 작은 연못도 있었고, 꽃밭에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영산홍이나 장미, 채송화, 봉숭아, 맨드라미, 샐비어 등이 무성하게 피어났다. 옆집 마당에도 꽃이 많았다. 어머니들은 봄이면 마당을 돌보다가 담 너머로 수다를 떨곤 했다.

우리 집에서 꽃밭을 가꾸고, 마당을 손질하는 사람은 주로 어머니였다. 다섯 아이의 도시락을 싸고, 할머니를 모시고, 집안 대소사에 바쁘신데도 어머니는 마당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술을 좋아하셨던 아버지는 늘 사업이 바쁘다는 핑계로 술에 취해 늦게 귀가하셨고, 일찍 나가셨다. 그래도 일요일이면 아침 일찍 마당에 나가 물을 주거나, 나무 아래 서서 한가로운 표정으로 오랫동안 담배를 피우시곤 했다. 옆집 아저씨도 그때쯤이면 마당에 나와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지금도 그 마당을 생각하면 그런 풍경들이 선하게 떠오르면서 새삼 돌아가신 아버지가 그리워진다.

내가 그 집을 떠난 것은 결혼하면서였다. 그 후 아파트 붐이 일었고 가족은 아파트로 이사했다. 아버지는 떠나고 싶어 하지 않았지만, 어머니를 이기지 못했다. 주택 관리에 넌덜머리가 났던 어머니는 편리한 생활에 대한 동경으로 미련 없이 그 집을 떠나신 것이다.

나는 아주 오래전에 옛집에 대한 그리움으로 그 집 앞까지 가본 적이 있었다. 결혼과 함께 부산을 떠나있다 돌아온 얼마 후였다. 담 너머로 보이는 모과나무의 굵어진 가지들이 세월의 흐름을 말하고 있었지만, 문틈으로 훔쳐본 마당 풍경은 옛 모습 그대로였다. 다행스럽고 고마웠다. 그 일대의 많은 주택이 원룸으로 바뀌어 옛집이 남아있지 않으리란 우려를 하고 간 참이었다.

나는 얼마 남지 않은 옛집의 운명에 조바심을 내면서 언젠가 이 집에 다시 살고 싶다는 생각을 간절히 했다. 하지만 삼 년 후쯤 다시 갔을 때 옛집은 흔적도 없고 원룸이 들어서 있었다. 허전하기 이를 데 없었다. 헤아려보니 그렇게 되기까지 20년이 좀 지나 있었다.

내 시부님이 한때 살았던 옛집은 적어도 십여 년 전까지는 남아 있었다. 올해 구순의 아버님은 십여 년 전, 십대 때 돈 벌겠다고 가서 고생하며 살았던 일본 후쿠오카 근처의 옛집을 찾아가셨다. 어느 날 여행길에 문득 솟구친 향수가 아버님의 발길을 잡아끌었던 것이다. 찾아가 보긴 하지만 설마 남아 있으랴 했다.

놀랍게도 아버님이 깃들었던 집은 지붕만 바뀌었을 뿐 그대로 있었다. 그때 일하셨던 간장공장도 남아 있었다. 경영은 손자가 하고 있었다. 간장공장 사장은 아주 반가워하면서, 일을 참 열심히 했던 한국인 류(柳) 군에 대한 얘기를, 할아버지에게서 들었다고 했다. 아버님의 추억은 갑작스럽게 생생해져서 그 시절로 달려갔다. 마을에는 옛 기억을 희미하게나마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 몇몇 남아 있었다.

거의 60년이나 지난 후에 옛 추억을 고스란히 되살려주는 장소와 조우하는 일은 우리나라에선 거의 불가능하다. 내가 살았던 집들은 지금 다 사라졌다. 문현동 금융센터, 명륜동의 아파트 대단지, 대연동 원룸 골목 속에 나의 어린 시절과 청춘의 추억은 매몰되었다.

프랑스의 지리학자 '발레리 줄레조'는 1993년에 이미 우리나라의 거대한 아파트단지를 보고 놀라서 긴 연구 끝에 2007년 '아파트공화국'이란 책을 출간했다. 그녀에게 더욱 이상했던 것은 아파트가 중산층을 위한 주거공간이란 것이었다. 우리의 중산층들은 처음엔 아파트가 편리하다는 이유로, 지금은 그보다는 재테크의 수단으로 너나 할 것 없이 아파트에 살고 있다. 그래서 아파트는 지금도 계속 층수를 높여가며 세워지고 있다. 그 사이에 산과 바다와 강이란 천혜의 조건을 가져 아름답게 발전할 수 있었던 도시는 거대한 빌딩 숲이 되어가고 있다. 곳곳에서 산이 뭉개지고, 오래된 주택단지가 아파트 단지로 탈바꿈하면서 멀리 보이던 능선들을 다 가려버렸다. 길을 걸으면, 어릴 땐 그토록 넓던 하늘이 더없이 좁아지고 거대한 빌딩 숲의 미로에 갇힌 기분이다. 자연 가슴이 답답해지고 짜증이 치민다.

자연을 파괴하고, 추억을 되살릴 장소를 잃어가는 도시는 고유한 분위기가 사라져 삭막하고 무미하다. 그런 환경에서는 사람도 메마르고 삭막해진다. 문을 닫고 들어가면 이웃과 단절되는 환경이기에 점점 이기적으로 되어간다. 모든 생물은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 그런데도 도시 곳곳에서는 끊임없이 아파트가 세워지고 있다. 인구는 자꾸 줄고 있는데, 훗날엔 그 많은 건물이 이래저래 거대한 재앙이 되지 않을까 싶어 두려워진다.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