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원효대사(617~686)가 부산 기장군 불광산 중턱에서 수도할 때였다. 한 날 중국 당나라의 수도 장안을 투시해 보니, 종남산 운제사 대웅전의 대들보가 썩어 무너지고 있었다. 대웅전 안에서 예불을 드리던 1000여 스님의 목숨이 위태로운 순간이었다. 대사는 급히 소반에 '해동의 원효가 소반을 던져 스님들을 구한다'는 뜻의 '해동원효척반구중(海東元曉擲盤救衆)'이라는 글을 적어 날렸다.

운제사 대웅전 앞뜰에 다다른 소반은 공중에서 맴돌았다. 이 광경을 보려고 스님들이 일제히 앞뜰로 나오자마자 대웅전은 무너졌다. 원효대사가 생명의 은인임을 안 스님들은 대사의 가르침을 받기 위해 신라로 건너왔다. 그리고 경남 양산 천성산(千聖山)에서 대사의 설법을 듣고 모두 도를 깨쳤다.

송나라 승려 찬녕이 쓴 '송고승전(宋高僧傳)'에 나오는 이야기다. 설화일 뿐이지만, 당시 원효 사상의 국제적 위상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대사의 대표적인 저술인 '대승기신론소'만 봐도 이를 알 수 있다. 인도의 마명 보살이 쓰고, 중국 진체 스님이 번역한 '대승기신론'에 대사가 주석을 단 이 책은 중국 불교계에서 그 이론을 그대로 따를 만큼 학문적 권위를 인정받았다. '해동소(海東疏)'라는 별칭을 붙일 정도였다.

퇴계 이황, 난설헌 허초희처럼 학식과 문명을 일본이나 중국에 떨친 인물은 있지만, 근대에 이르기까지 이리 많은 외국 인재가 우리 지식인을 찾아 들어온 적은 없다. 새삼스레 원효대사를 언급한 것은 우리 청년 인재가 일본으로 대거 유출되고 있어서다. 우리나라는 청년실업난이 갈수록 심각해지는 반면, 일본은 대졸 취업률이 거의 100%에 달해 직장을 구하기 훨씬 쉽기 때문이다.

정부 지원을 통해 일본 취업에 성공한 이가 2014년 339명에서 지난해 1103명으로 3배가량 는 데다, 워킹홀리데이까지 포함하면 올해 1월 기준으로 일본 취업자가 4만8121명에 이른다고 한다. 가히 일본이 우리 인재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라 할 만하다. 여기에는 호황세를 타는 일본 경제 사정도 있지만, 일본 정부의 강력한 노동 개혁 정책이 낳은 일자리 창출이 큰 몫을 차지한다. 비정규직 처우 개선을 위한 동일노동 동일임금 적용, 외국 인재 영입 등 파격적인 개혁안이 그것이다. 대선주자들이 '적폐 청산' '자강' 등 슬로건만 앞세울 게 아니라 실질적인 일자리 창출 정책을 제시해야 하는 까닭이다. '토종 사상가' 원효대사가 그리워지는 오늘이다.

이경식 논설위원 yis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