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전 사회 초년생일 때 당대 석학 이어령 교수께서 특강을 해 주신 일이 있었다. 그 내용이 워낙 인상 깊었기에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바로 3:7의 원리이다. 내용은 일단의 개미 사회의 움직임을 관찰해보면 다들 열심히 일하고 있는 것 같아도 3만 열심히 일하고 7은 대충 일하는 척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일을 열심히 하는 3을 따로 분리해 놓아도 그중에서 또 3은 일하고 7은 척한다는 것이다. 이는 비단 개미 사회만의 현상이 아닌 우리 인간사회에도 적용되는 원리라고 한다. 따라서 3과 7이 조화롭게 상생할 때 건전한 사회로 발전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한데 만약 3과 7이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상대를 존중하지 않는다면, 또 7은 3에게서 뺏으려고 하고, 3은 7에 대한 오블리주를 외면하게 된다면, 그 사회는 갈등과 분열로 무너지고 만다.
최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사회통합 실태 및 국민인식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인들은 현재 한국의 사회통합 상황에 대해 불만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과거 10년 전에 비해 사회통합은 심하게 악화되었으며, 10년 뒤 미래에도 별로 개선되지 않으리라는 비관적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의 분열을 치유할 해법은 없는 것일까? 독일과 스위스의 사례를 통해 그 비결을 살펴보자.
독일에는 시민교육의 헌법에 해당하는 대원칙이 있다. 바로 '보이텔스바흐협약'이다. 이 협약은 1976년 이념대립이 극심하던 분열의 시기에, 보이텔스바흐라는 작은 도시에서 제정되었다. 좌우 진영의 치열한 논쟁과 토론을 거쳐 합의가 되어 현재까지 독일국민 통합에 토대가 되고 있다. '보이텔스바흐협약'의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다. 자립적인 판단을 방해하는 주입식 교육을 금지하고, 서로 다른 관점의 논쟁상황은 있는 그대로 나타내며, 마지막으로 배우는 자가 이해관계를 분석하고 행동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보이텔스바흐협약'의 정신을 통해 독일 국민은 오랜 시간 그들의 의식 속에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절차적인 민주주의를 체화시키게 되었다. 그 결과 독일 사회는 토론과 합의를 바탕으로 극한 대립을 지양할 수 있게 되었고 공동의 선을 끌어낼 수 있는 사회구조로 변모되었다.
만약 독일이 좌우 대립에 휩쓸려 사회통합의 DNA 구축을 위한 노력을 게을리했다면 오늘날의 베를린 장벽 붕괴와 경제 발전은 요원했을 것으로 본다.
'스위스 나이프'는 빨간색 다용도 칼로 유명하다. 각기 다른 기능을 수행하는 주체가 모여 조화롭게 통합되어 있는 이 칼의 이미지는 흡사 다양성 속의 통합이라는 스위스 정신을 대변하는 것 같다. 장철균 전 스위스 대사는 저서 '스위스에서 배운다'에서 어느 국가보다 분열되기 쉬운 조건을 갖췄던 스위스가 일류국가로 발전한 비결을 분석하고 있다.
스위스는 자연조건은 물론 지정학적 요건이 우리나라와 비슷하나 다민족, 다언어에 연방 국가이다. 한마디로 정치, 경제, 문화적 이질성이 큰 나라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와 사회적 안정을 위해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할 수 있는 합리적인 제도와 사회구조를 구축해 왔고 그 토대 위에 경제적 혁신을 거듭해왔다. 그 결과 국가경쟁력, 청렴도, 행복지수 순위가 모두 지속적으로 글로벌 최상위를 기록할 수 있게 됐다.
스위스 사회통합의 원동력은 바로 정치제도에 있다. 스위스는 외교 국방 등의 국가적 사안을 제외하고 많은 사안을 지방정부 격인 26개의 칸톤이 주민투표로 결정한다. 각 지방의 자치권이 철저히 보장되어 있고 중앙도 행정권이 7인의 연방 각료회의에 분산되어 있다. 또 시민발의제도를 통해 국민이 일정 수 이상의 지지자를 얻어 국가의 정책 등을 반대할 수 있는 의안도 제시할 수 있다. 이러한 분권형 협치 제도를 통해 스위스는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사회통합을 완성해왔다.
서로 생채기를 내며 극단으로 치닫는 우리에게 독일과 스위스가 건네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통합 한국정신이요, 그 정신의 비옥한 토양을 일궈내는 것이다.
너와 내가 다르다는 가장 기본적인 명제가 인간의 이기적 속성상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은 분명하지만, 서로 인정하고 이해할 수 있는 인간의 사회적 속성에서 본다면 제도와 사회구조의 점진적인 보완을 통해 우리 사회도 충분히 스위스와 독일을 능가하는 공동체 국가가 되지 않을까?
거기에다 국민의 조화와 통합을 위해 각계의 지도자들이 진정으로 계몽운동에도 앞장서 준다면 신뢰의 뿌리는 더욱 굳건해질 것으로 믿는다. 만약 지도자가 정치와 경제적 목적을 위해 국민을 선동하고 분열을 조장한다면 힘들여 쌓아놓은 제도와 사회구조는 모래 위의 성처럼 일순간에 무너져 버릴 것이 분명하다.
한국해양보증보험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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