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서쪽 지방에 사시는 분들은 마스크를 챙겨서 집 나서시기 바랍니다. 오전에 서쪽 전역에서 미세먼지농도 '한때 나쁨' 단계를 보이겠고요. 기압골의 영향을 받아 점차 비가 내리면서 수도권은 비에 의한 세정효과로 오후 들어 '보통' 단계를 회복하겠습니다. 미세먼지농도가 낮아지는 오후 시간대에 실내 환기를 하시는 것이 좋겠고요…."
어느덧 우리 귀에 익숙해진 일기예보의 한 장면이다. 기온이 몇 도인지, 비는 오는지 무심코 지나치며 들었던 일기예보가 요즘 들어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 이유는 미세먼지가 우리의 삶, 특히 건강과 직결된 탓일 게다. 그래서 요즘의 일기예보는 '날씨와 생활', '날씨와 건강'이라고 고쳐 부르는지도 모르겠다. 비를 맞은 자동차에는 점박이처럼 미세먼지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세차를 해야 하고, 외출 후에는 개인위생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하는 게 우리의 일상생활이 되어 버렸다.
물 맑고 공기 좋고 경관이 빼어나 금수강산이라 불리던 우리나라가 어쩌다 먼지마저 불안해하며 살게 되었을까. 다른 나라의 이야기로만 알았는데 우리나라도 이제 미세먼지에서 자유롭지 않게 되었다. 인터넷에서 미세먼지를 검색해 보면 그 원인과 대책을 비롯해 관련 상품까지 무수히 올라와 있다. 마스크, 공기청정기, 실내 빨래건조기는 물론 산소캔까지 등장해서 적지 않은 금액에 판매되고 있다. 공기마저 사서 마셔야 하는 세상이라니, 격세지감이 따로 없다. 상식이었던, 스모그는 나쁘지만 먼지는 괜찮다는 말도 어느덧 사라진 듯하다.
중국의 산업화가 급속하게 진행되면서 봄이 되면 '중국발 황사'가 일기예보의 단골고객이었는데 최근 들어서는 '미세먼지'도 모자라 '초'미세먼지가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해버렸다. 먼지의 나쁨 정도가 이미 비교급을 거쳐 최상급까지 도달한 느낌이다. 미세먼지에 대한 관심과 불안감이 적지 않은 요즘, 국제신문 3월 28일 자에 실린 환경단체의 캠페인 사진이 눈길을 끌었다. 부산환경운동연합 회원들이 연산교차로에서 '미세먼지↓, 시민건강↑, 대중교통 이용, 공회전 줄이기로 미세먼지↓'라고 쓴 플래카드를 들고 캠페인을 벌이는 사진이었다.
미세먼지는 지름이 10㎛(마이크로미터, 1㎛=1000분의 1㎜) 이하의 먼지를, 초미세먼지는 그보다도 훨씬 입자가 작은 지름 2.5㎛ 이하의 먼지를 말하는데, 초미세먼지가 미세먼지보다 더 위험한 이유는 허파꽈리 등 호흡기 가장 깊은 곳까지 침투해서 혈액 속까지 유입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미세먼지는 단순히 공기만 오염시키는 것이 아니라 무려 연간 11조 원에 달하는 사회적 비용을 유발한다고 한다.
곧이어 국제신문 3월 31일 자에는 '중국에서 유입된 초미세먼지 영향으로 2007년 한국과 일본에서 3만900명이 조기 사망했다는 결과가 나왔다'는 기사가 실렸다. 중국 칭화대 베이징대와 미국 캘리포니아 어바인대,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대 국제공동연구진이 저명한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한 연구결과라고 하니 믿지 않을 도리가 없다. 2007년의 피해가 그 정도라면 현재의 피해가 어떨지는 가늠하기도 어려워 보인다. 이렇게 미세먼지는 이미 오래전부터 많은 사람을 서서히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 왜 미세먼지를 '침묵의 살인자'라고 부르는지 이 연구결과가 잘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필자는 어린 시절 시골에서 살다가 10살 때 부모님을 따라 울산의 공업지역 인근 동네로 이주하여 살았다. 고무신이 운동화로 바뀌었지만, 대신 밤마다 석유화학단지에서 내뿜는 메케한 연기로 인해 사흘이 멀다 하고 두통을 앓았고 식욕부진과 학습장애에 시달렸다. 동네 어른 중에도 약을 복용하는 사람이 많았다. 결국 필자가 대학 1학년 때 동네 사람들은 도저히 견디지 못할 공해 때문에 강제 집단이주를 하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필자는 현재 우리나라의 환경, 특히 미세먼지 문제를 누구보다 심각하게 바라보는 편이다.
정부에게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환경 문제를 인식하고 대중교통 이용, 생활쓰레기 줄이기 등 생활 속 실천을 통해 미세먼지 절감에 동참하는 자세가 요망된다. 자칫하면 미세먼지로 인해 모두 마스크를 끼고 살아야 하는 국토를 후손들에게 물려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대중교통 이용, 공회전 줄이기를 외치는 환경단체의 캠페인이 그 어느 때보다 절박하게 느껴진다.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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