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은 걷잡을 수 없는 불길이고, 처녀는 차가움과 열정이라'. 셰익스피어가 말했다. 장미꽃이 피고 지듯이 청춘과 아름다운 처녀도 이내 시든다고. 당시 유럽의 평균수명이 21세라고 하니, 청춘과 아름다운 처녀로 지내는 시간도 너무나 짧았다. 그러니 중년의 나이를 겪어나 봤을까? 16세기의 가장 아름답고 슬픈 사랑, '로미오와 줄리엣'이 비극적인 종결이 아니고, 결혼해 100세 시대에 살았다면 그들의 중년은 어떤 모습일까 생각해 본다. 빛나던 사랑은 찰나이고 인생이 허무하고 공허하게 느껴지는 이 시기에, 숨어 있던 복병인 갱년기 우울증, 제2의 사춘기라는 덫에 걸리게 된다.
폐경이 되고 여성호르몬이 현저히 감소하게 되면 출산 기능은 물론 신체에 여러 가지 증후군이 오게 된다. 갱년기(여성 40~55세, 남성 50~65세)는 폐경이 시작되면서 몇 년, 폐경 이후 1년까지를 의미하며 이 시기에는 난소의 기능이 소실돼 간다. 14세의 줄리엣은 별처럼 빛나는 반짝이는 두 눈을 가지고, 검은 까마귀들 속의 한 마리 흰 비둘기처럼 순수하지만, 50세가 되면 눈가에 주름이 잡히고, 안면의 홍조와 화끈거림, 가슴이 두근두근하거나 불안을 느낀다. 심신이 허약해지면서 자신감이 줄고 까닭 없이 우울해지며 불면의 밤을 만난다. 집중력이 떨어지고 건망증이 잘 생기고 땀이 많이 나고 근육과 관절 등 온몸이 아프다. 40대에서 50대 초반에 나타나는 갱년기 우울증은 배우자와의 사별, 폐경, 실직, 질병, 자녀 출가에 따른 공허함으로 인해 삶에 회의가 들면서 생긴다.
증상으로는 공연히 슬퍼지고 불안해지며 매사에 흥미가 없고 잘 웃지 않게 된다. 작은 스트레스에도 쉽게 흥분한다. 또한, 식욕이 감소하거나 지나치게 증가한다. 의욕도 저하되며 무기력해지고, 기억력 저하까지 나타난다. 심지어 자식이 성공했는데도 독립해나간다는 마음에 허탈감을 견디지 못하는 '빈 둥지 증후군'도 생긴다.
여기서 오해해서는 안 될 중요한 사실은 갱년기 우울증이 '의지가 약해서 생기는 병이 아니라'는 점이다. 신체에 이상이 생기는 다른 질환처럼, 우울증의 원인도 노르아드레날린, 세로토닌과 같은 뇌의 신경전달물질에 이상이 생겼으므로 꾸준히 의학적 치료를 받아야 완치될 수 있다.
갱년기 우울증은 일반적인 우울증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 갱년기 우울증으로 분류되는 환자들은 45세 이후에 처음으로 우울증을 경험해 초조감과 불안감을 겪는다. 갱년기 우울증에 걸린 환자 대부분이 꼼꼼하고 완벽주의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성취 지향적인 삶을 살아오다가 자신이 설정한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는 한계에 직면할 때 자존감이 흔들리고 우울증에 빠지게 된다.
우울증을 대처하는 중요한 생활습관은 여유와 긍정적 태도, 규칙적인 운동과 균형 잡힌 식습관 역시 중요하다. 취미생활을 하거나 햇볕을 하루 30분 이상 쬐면 좋다. 과도한 술이나 카페인 섭취를 피하고 명상과 요가, 이완요법, 30분 이내의 낮잠도 도움이 된다. 이런 생활습관의 변화는 '새로운 의학적 처방'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우울증은 적절히 치료받으면 80% 이상은 상당한 호전을 보인다. 하지만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면 더 심각한 상태로 빠지거나 자살을 시도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공인된 항우울제, 항불안제 등을 처방대로 복용하는 게 중요하다. 정신치료, 인지치료, 경두개 자기자극술, 전기충격요법 등 다양한 치료법을 병행할 수 있다.
가족들의 도움과 응원이 필요하다. 환자에게 '의지가 약하거나 게을러서 우울증이 생긴다'는 식의 어설픈 충고는 절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여러 가지 활동에 참여를 권하되 조급하게 강요하지 말고 약을 잘 먹을 수 있게 돕는다. 자살 시도와 같은 극단적 선택을 할 수 있으므로 치료 시기를 놓치지 않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만약 자살을 암시하는 이야기를 하면 반드시 주치의에게 알려야 한다.
지금까지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산 당신, 흐드러지게 만개한 꽃을 보면서 까닭 모를 눈물이 흐르지는 않는가? 삶이 갑자기 허무하게 느껴지는가? 그렇게 소중하게 여겨지던 직장도 자식도 모두 자신을 버린 것처럼 여겨지고 삶의 의욕이 없다고 느껴진다면,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를 찾는 게 좋다. 건강한 중년을 위해서.
대동병원 정신건강의학과장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