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지 않습니까?" 지난달 20일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헌법재판관들의 날카로운 질문이 쏟아졌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 15차 변론기일 당시의 얘기다. 강일원 재판관은 증인으로 나온 방기선 전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실 행정관에게 그가 개입한 미르·K스포츠 재단 설립 과정에 관한 의문점을 캐물었다. 결국, '송곳' 같은 질문은 증인의 자물쇠 입을 열게 했다.
침몰한 세월호가 떠오르면서 헌재도 다시 주목받았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박 전 대통령의 성실한 직책수행 의무 위반을 지적한 김이수 이진성 헌법재판관의 탄핵심판 보충의견이 그것이다. 두 재판관은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후에도 집무실에 정상 출근하지 않고 관저에 머문 것은 그 자체만으로 대통령의 불성실함을 드러낸 징표"라고 지적했다. 물론 헌재는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대통령의 성실한 직책수행 의무는 탄핵소추 사유 자체가 될 수는 없다고 판단했음에도 두 재판관의 보충의견은 통렬하고 엄중하다.
'세월호 7시간 의혹'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박 전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당일 오전 10시에 첫 보고를 받았지만 무슨 조처를 했는지 알려진 게 없다. 그러는 사이 의혹은 쌓이기만 했다. 그 중심에는 박 전 대통령이 있었다.
정말 그랬다. 세월호가 바닷속에 가라앉은 사이 국가는 진실을 감췄다. 세월호 참사 이후 대한민국이 더 안전해진 것 같지도 않다. 박 전 대통령과 비선 실세가 국정을 농단했다. '이게 나라냐'는 온 국민의 질타가 쏟아졌다. 헌재의 대통령 파면은 그나마 법치와 원칙이 제대로 서 있음을 보여줬다.
인양된 세월호는 '이게 나라냐'의 또 다른 장면이다. 시험인양을 시도한 지 하루도 안 돼 세월호는 물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2014년 4월 16일 침몰당한 지 1073일 만이었다. "이렇게 빨리할 수 있는데, 왜 이제서야…"라는 탄식이 나올 수밖에 없다. 게다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얼마 되지 않아 인양이 이뤄지는 바람에 '정치적 고려'가 있었던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다.
인양에 왜 3년이나 걸렸을까. 여기서도 국가의 존재 의미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정부는 세월호 인양 여부를 놓고 논쟁만 거듭하다가 '세월'을 보냈다. 정부가 인양을 최종적으로 결정한 것은 2015년 4월. 참사 발생 이후 1년 만이었다. 그해 8월 중국의 상하이샐비지가 인양 업체로 확정됐다. 다시 통째로 인양할지, 절단해서 들어 올릴지를 놓고 시간을 허비했다. 선미를 들어 올리는 방식으로 바꾸면서 작업이 애초 예상보다 5개월 또 늦어졌다. 지난해 10월 말의 일이었다. 이어 상하이샐비지는 크레인을 재킹바지선으로, 플로팅독을 반잠수식 선박으로 각각 바꾸느라 미수습자 가족의 눈물 같은 시간이 또 흘렀다.
지난 28일 밤에는 팽목항에서 해양수산부가 '세월호 미수습자 추정 유골 발표'로 한바탕 소동을 빚었다. 미수습자 가족은 두 번 울었다.
세월호 참사 원인을 둘러싼 온갖 의혹은 지금도 진행형이다. 앞으로 온전하게 의혹을 해소하고 진실을 파헤치는 일은 선체조사위원회의 몫이다. 투명하고 공정한 진상 조사여야 한다. 소모적인 논쟁을 더는 반복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에서다.
세월호 선체가 목포신항에 거치되면 정부 합동수습본부가 가동되고, 선체조사위도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간다. 지난 28일 국회 본회의에서 선체조사위 관련 특별법이 통과됐다. 선체조사위는 동행명령권, 고발 및 수사요청권, 감사요구권을 지닌다. 이전의 특별조사위원회가 하지 못했던 선체 조사를 진행하게 된다. 세월호 선체와 유류품, 유실물에 대한 정밀조사를 수행해 진실을 규명하는 게 요체다. 선체조사위는 조사 대상자나 참고인의 출석을 요구할 수 있고, 출석에 불응하면 동행명령장을 발부하는 권한도 있다. 범죄 혐의 개연성이 있을 때는 수사기관 수사를 요청할 수 있고, 감사원 감사 역시 요구할 수 있다. '힘이 센' 선체조사위에 거는 기대가 클 수밖에 없다.
'세월호 7시간'의 박 전 대통령이 30일 오전 법원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한다. 헌재가 박 전 대통령에게 법과 원칙에 따라 파면을 결정했다면, 이제는 사법부의 법과 원칙에 따른 판단이 남았다. 국민의 또 다른 심판도 예정돼 있다. 오는 5월 9일 치러지는 대통령 선거다. 이는 '세월호 당시'와 다른 대한민국을 만드는 자리가 됐으면 한다.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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