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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석 칼럼] 체면치레인가, 체면 관리인가

'사람 몸(體)과 얼굴(面)'뜻하는 체면은 내면의 반영

모자라도 안 되고 넘쳐서도 안 되기에 중용의 덕 필요

  • 국제신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7-03-23 18:51:24
  •  |  본지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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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관에게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관습적이고 의례적인 체면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이 필수였다. 파울루 코엘류의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에 나오는 말이다. 소설에는 청소년기 아들의 자유분방한 행동과 언사 때문에 체면을 잃을까 전전긍긍하는 외교관 아버지의 치졸함과 비정함이 잘 묘사돼 있다.
소설에 등장하는 아버지는 단순히 체면에 집착하는 잘못을 저지른 게 아니다. 그의 잘못은 체면 관리 수준을 잘못 적용한 데에 있다. 외교관 차원의 체면 관리를 가정이라는 사적 영역과 일상생활에까지 적용했기 때문이다.

최근 우리 현실에서도 외교 영역의 체면 관리 수준을 국내 정치에서도 유지하려다 실패한 경우가 있다. 이는 일정한 체면 관리 수준에 너무 습관 들어 있기 때문에, 다른 상황에서 그 수준을 조정하지 못한 경우다. 능력 있는 사람은 직업을 위해서도 좋은 습관을 만들어 가지만, 상황에 안 맞으면 그것에서 빠져나올 줄 알아야 안다. 물론 이런 능력을 갖추기가 쉽지 않지만, 큰 정치를 하려는 사람에겐 그런 능력이 요구된다. 불필요하게 체면을 잃지 않으려는 어법과 수사도 마찬가지다. 외교적 수사는 국가의 체면과 연관되어 있어서 매우 중요하지만, 국내 정치에서 잘못 쓰면 자신의 체면만 차리려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거부감을 준다.

이러한 목전의 경험 때문인지 무심코 사용해왔던 체면이란 말을 곰곰 살펴보게 된다. 체면은 글자 그대로 '사람의 몸(體)과 얼굴(面)'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체면이란 '겉으로 드러나는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라고 해서 내면적인 것과 반대 의미는 아니다. 여기서 '모든 것'이라는 말이 중요하다. 겉의 모든 것은 안의 일부라도 담고 있기 마련이다. 체면에는 사람의 내면 또한 반영되어 있다.

인간이 문명을 이루고 사회관계를 맺으며 사는 한, 체면에 대한 의식과 체면 관리는 불가피하다. 체면의 긍정적 의미는 그것이 인간관계에서 바람직한 이미지를 얻고자 하는 욕구의 반영이라는 데서 찾아볼 수 있다. 체면 차리기를 잘 못하면 '체면치레'가 되지만, 체면 차리기를 잘하면 '체면 관리'가 된다. 체면 관리의 핵심은 상황 판단과 적절한 처신이다.

세련된 사회관계에 치우친 체면 차리기는 자연스러운 태도와 행동에서 멀어질 위험이 있다. 솔직 담백함과 거리가 생기면서 오히려 인간관계에서 격리감과 자기 소외를 가져올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체면은 부정적인 것이 된다. 그래서 체면 유지를 위해 인간성을 희생하기도 하고, 체면치레로 거짓된 태도를 보이기도 하며, 별것 아닌 일로 체면에 몰리기도 한다.

반면 체면에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은 속세를 초월해서가 아니라 태만해서 그럴 경우가 많다. 또한 체면 관리를 무시하면 자기 폄하에 이르기 쉽다. 체면 관리는 자아 관리의 일종이기 때문이다. 체면을 지키려는 편에는 명예와 자기 존엄성이 있고, 체면을 소홀히 하는 편에는 태만과 자기 폄하가 있다.

체면이 인간관계의 걸림돌이 되기도 하지만 체면에 대한 의식은 경망스러운 태도를 제어하는 역할을 한다. 특히 어떤 부탁을 할 때 체면 의식은 작동한다. 그러므로 진지한 체면 관리는 불필요한 청탁을 주고받기 전에 숙고하게 하는 기능을 한다. 고위 공직자들이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체면이라도 있다면, 엄청난 부정부패를 저지르지 않을 것이다. '체면이고 뭐고 집어치우고' 행동하고자 할 때, 사람의 행동은 막다른 골목에서 해결책을 찾거나 합리적인 것에서 벗어나 비뚤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런 점에서 체면 관리는 졸속한 판단과 졸렬한 행위를 제어하는 순기능을 한다. 체면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마구 행동할 것이다. 속된 말로 '얼굴에 철판 깔고' 행동하는 경우가 된다.

앞서도 보았듯이 정치인들의 어법과 수사 역시 체면 관리의 중요한 부분이다. 선거의 전략이라고 하지만 지나치게 애매모호한 어법을 쓰면 '언어의 체면치레'가 된다. 선거전이 과열되면 정치인들의 막말이 구설에 오른다. 막말은 평소 자기한테 맞지 않는 어법을 특별히 쓰려고 할 때 나올 경우가 적지 않다. 덩치 큰 나라의 덩치 큰 대통령 후보가 목소리 높였다고 따라 하면 일시적 관심을 끌 수 있을지언정 깊은 감동의 울림을 줄 수 없다. 어법과 수사도 자신의 처지와 체면에 맞아야 한다. 어법은 체면을 소통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체면은 기성세대만의 문제는 아니다. 젊은이들이 흔히 쓰는 속어 가운데 '쪽 팔린다'는 표현이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체면을 잃는다는 뜻이다. 젊은이들도 자신이 적절한 수준의 체면을 지키는지, 과도한 체면치레를 하는지, 체면을 무시하고 마구 행동하는지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든 고민하고 있다는 뜻이다. 물론 진지한 성찰이 더욱 필요하지만 말이다.

사실 체면에 관한 한 쉬운 해결책은 없다. 체면은 차려도 문제이고, 안 차려도 문제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인간관계를 맺고 사는 한 체면 없는 일상생활은 없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체면의 문제를 안고 살아야 한다. 더구나 체면 관리는 가장 곤혹스러운 순간에 어떤 선택과 행동을 해야 하는 것과 직결되어 있다. 체면 문제의 해결에는 예술 수준의 처세가 요구된다면 지나친 말일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중용을 인간 삶에서 매우 중요한 덕목으로 삼는다. 어느 쪽으로나 치우침이 없이 온당한 일, 또는 지나치거나 모자람 없이 알맞은 일이 중용이라면 체면이야말로 중용의 덕과 밀접하다. 체면 의식이 없다면 인간의 언어와 행동은 막말이나 막된 짓이 될 것이고, 체면 차리기가 지나치면 활력을 잃고 적기에 실천하지 못하는 삶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즉 체면은 모자라도 안 되고 넘쳐서도 안 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체면은 중용의 덕이 일상적으로 시험 되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점을 사람들은 흔히 놓치고 있다. 체면의 문제를 항상 능숙하게 처리하는 것을 바랄 수는 없지만, 적어도 체면에 대해 진지한 의식을 갖는 것은 필요하다.

철학자·영산대 자유전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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