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 1. 정부세종청사를 함께 출입하는 후배 기자는 지난주 월요일 오후 본사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오송역에서 서울행 KTX를 기다리다 친분 있는 모 경제 부처 국장을 만났다고 한다. 그런데 잠시 후 낯익은 얼굴의 같은 부처 다른 국장 3명이 대합실로 들어오는 걸 목격했다. 그래서 옆에 있던 국장에게 "오늘 서울에서 중요한 행사라도 열리나 보죠"라고 물었다고 한다. 그런데 돌아온 대답은 이랬다는 것이다. "중요한 행사는 무슨…. 보면 모르겠어요. 정치권에 끈이라도 대 보려고 가는 거 같은데요." 오히려 당황한 쪽은 후배 기자였다.

사례 2. 얼마 전 정부세종청사 인근의 한 식당에서 열린 모 부처 장관이 주재한 기자간담회. 점심을 겸한 이날 간담회에는 국장급 간부 여러 명이 함께 참석했다. 부처 현안에 대해 기자들과 격의 없는 소통을 위해 만들어진 자리다. 그렇지만 일부 좌석은 이내 화제가 정부 조직 개편으로 옮겨갔다. 부처 간부들은 이날의 현안보다는 정부 조직 개편과 관련한 부처의 입장을 설명하기 바빴다. 정권이 바뀌더라도 자기가 몸담은 부처의 역할은 더 확대돼야 한다는 식이다. 또 기자들에게 관련된 여론을 들어보고 동향을 체크하기도 했다.

사례 3.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달 17~18일 독일 바덴바덴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에 참석한 후 지난 19일 '빈손' 귀국했다. 중국의 사드 보복에 대한 해법을 모색하기 위해 중국 샤오제 재정부장과 면담을 추진했지만 중국 측의 거부로 무산됐다. 미국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과는 어렵게 만났지만 환율조작국 지정과 관련된 긍정적인 사인을 받지 못했다. 이와 관련한 언론의 비판이 쏟아졌지만 기재부는 재빨리 해명자료를 내던 평소 모습과는 달리 '묵묵부답'이다.

사례 4. 지난 8일 유 부총리는 경제관계장관회의를 마친 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여부에 대해 묻는 질문에 "(사드 관련) 중국이 공식적으로 밝힌 것은 외교부와 국방부 성명밖에 없다. 우리 정부가 사드 관련 경제보복이라고 단정 짓고 행동할 수 없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같은 시각 농림축산식품부는 국내 주요 수출업체들에 대한 자체 조사를 바탕으로 "사드배치 발표 이후 중국의 한국 식품에 대한 통관·검역 강화가 우려되고 있는 상황"이라는 공식 입장을 내놨다. 누가 봐도 명백히 서로 다른 곳을 쳐다보고 있는 상황이다.

사례 5. 올 1월 기재부와 산업통상자원부가 보여준 '불협화음'은 미국 신행정부를 맞이해 좌충우돌하는 우리 정부의 모습을 여과 없이 노출했다. 기재부는 대미 경상수지 흑자 폭을 줄이기 위해 '2017년 대외경제정책방향'에 '미국산 부품 수입 확대'를 넣었지만 당일 삭제됐다. 산업부가 "현상 전에 패를 보여주면 안 된다"며 강력 반발했기 때문이다.

5월 대선을 앞두고 세종시의 공직 사회가 차기 권력에 줄을 대고, 부처 조직 개편에 대비하는 데 온통 정신이 쏠린 모습이다. 어찌보면 전혀 새로운 모습도 아니다. 정권 교체기마다 반복되는 현상이다.

그러나 올해는 유난히 그 정도가 더 심하다는 것이 공통된 지적이다. 우리를 둘러싼 정치·경제적 대내외 환경은 어느때보다 위중한데도 말이다. 요즘 들어 하루가 멀다하고 정부세종청사를 뿌옇게 뒤덮고 있는 '봄의 불청객' 미세먼지만큼이나 답답하다.

서울본부 경제부 부장 cjh@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