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도시철도 1호선을 타고 서면 방향으로 가던 중 한 청년이 손바닥보다 약간 큰 쪽지를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나눠준다. 아니, 보든지 말든지 상관 않겠다는 몸동작으로 사람들 무릎 위에 척, 올려다 놓는다는 편이 정확하다.

"어릴 적부터 고아로 자란 저는…"으로 운을 떼는 문장들이 적혀 있다. 객차 노약자석 앞에 또 다른 청년이 서 있다. 둔중하게 울리는 중저음의 목소리로 한 승객 앞에서 "제발 예수님을 믿어서 천국 가세요"라고 읍소하듯 말한다. 사뭇 다른 행태를 보이는 두 청년을 마주한 사람들은, 그러거나 말거나 아랑곳하지 않고 통화를 하거나 휴대전화를 보거나 잡담을 나누거나, 혹은 졸거나 멍하니 앞만 주시하거나 제각각의 포즈로 자신의 목적지를 향해 가는 중이다.

일상의 풍경이 낯설게 보일 때가 있다. 특별하달 것도 없이 비일비재 일어나는 도시의 자잘한 풍속을 대할 때면, 가끔 영문도 모르게 특정한 장면이 클로즈업 되면서 머릿속을 가득 채우곤 한다. 도시철도에서 보게 된 두 청년의 행위를 곱씹는다.

무엇이 이들을 도시 한복판에 세워 하소연하게끔 했을까. 쓰잘 데 없는 생각이지만 나는 이러한 의문을 품으며 두 청년에 주목한다. 외롭고 가난한 감성 팔이 청년은 분명 살기가 퍽이나 어려울 것이다. 도시철도 같은 데서 구걸하는 사람에 대한 여러 팩트는 지우자. 그러니까 어떤 경로로, 혹은 어떤 시스템으로 금전의 유통행위가 이루어지는지 '그쪽 세계'에 눈밝은 이가 전해주었던 믿을 만한 정보는 삭제하기로 한다.

그는 분명한 목적으로 시민들에게 다가섰다. 돈을 달라는 것, 그래서 시민들의 따뜻한 적선으로 자신이 먹고 살 수밖에는 더 이상의 도리가 없다는 것. 즉 경제난에서 비롯한 생존의 절박한 선택지로써 도시철도라는 공간으로 스며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훤칠한 키와 외모에 멀쩡한 몸동작이 오히려 낯설게 보일 만큼 그의 문장은 구구절절 상투적인 슬픔과 상처의 개인사가 인쇄되어 있다.

그리고 전도하는 청년을 생각한다. 그는 마치 죽어서 천국에라도 다녀온 적이 있는 사람처럼 애원한다. 그의 눈에는 사람들 대부분이 곧 지옥의 구렁텅이에 떨어질 '순번대기자'처럼 보일 것이다. 불신자들의 행태와 삶이 너무도 가련하고 애처로워서, 예수님이 보여주었던 사랑과 용서와 연민을 가득 품고서 울먹이며 신신당부한다. 제발 그 분을 믿어달라고, 그 분을 믿어서 영광스럽게 천국행 티켓을 거머쥐라고.

두 청년에게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금강석보다도 단단한 믿음이다. 구걸하는 청년에겐, 비록 희박한 확률일지언정 어느 배포 큰 시민이 지갑을 열어 지폐더미를 척, 하니 건네주리라는 희망이다. '직업'을 바꾸지 않는 한 그런 바람은 늘 작동한다. 전도하는 청년에게는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어서, 다함께 천국에 입성했으면 하는 믿음이 있을 것이다. 아니, 현실적으로는 단 한 사람이라도 좋으니 자신의 손을 덥석 잡으며 "믿겠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믿으면 좋을까요?"라 진실 되게 응답하며 자신이 이끄는 대로 교회에 발을 내디딜 것이라는 믿음 말이다.

어떤 방식의 믿음이든, 혹은 정당성 유무와는 상관없이 사람은 '믿음'으로 해서 자신의 존재 근거를 확보한다. 두 청년의 경우처럼 더러 눈살 찌푸리게 하는 행위일수록 허황한 믿음에 대한 예속성은 커지게 마련이다. 시속(時俗)이 경박해지고 어수선하다. 구성원들 각자의 믿음이 사라지거나 망실된 게 아니라, 오히려 비합리적이고 이기적인 방식의 믿음이 팽배해질수록 국가나 사회는 비정상의 궤도로 탈선하기 십상이다. 엉뚱한 궤도에 들어선 열차를 멈추게 하거나 본래 궤도로 곧바로 진입하기는 힘들다. 다만 더디고 지난하겠지만 조금씩 올바른 길로 되돌리는 수밖에는 없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자기기만적인 믿음은 인지적 부조화의 또 다른 양태다. 곳곳에 횡행하는 거짓과 물신숭배, 그리고 앞뒤 가리지 않고 자기가 속한 조직의 안녕만을 극도로 위하는 조직 이기주의를 떠올려보자.

이 상황에서는 아무리 정치나 경제가 선진화된다 하더라도, 단지 포장지만 요란하고 질소로 찬 과자봉지처럼 시민들의 삶은 공허해진다. 허무한 빈자리에 허깨비 같은 믿음이 들어서는 순간 우리는 또 다른 원시사회를 살아가게 될 것이다. 태초의 지복한 시원으로서 원시공동체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잡아먹어야지만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 야만 공동체 말이다.

문화인과 야만인은 딱 종이 한 장 차이에 지나지 않다. 믿음을 고수하되 그 믿음의 성분과 의미가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바탕에서 출발했는가, 아니면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오로지 그렇게 되었으면 하고 바라는 자기만족에서 출발했는가, 이다. 문화는 이성과 조화된 감성을 숙주로 형성되고, 야만은 감정과 결합된 본능적인 욕심에서 만들어진다. 문화인이 되고 싶다면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고 합리적이고 명철한 판단에서 믿음을 궁굴어야 하지 않을까.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