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3년 4월 제50주년 법의 날 기념식에서 법치를 강조하면서 한 초등학생이 말했다는 '법은 목욕탕이다'라는 정의를 인용한 적이 있다. 다소 뜬금없는 비유였지만 그 의도를 모를 바는 아니었다. "법이 우리에게 꼭 필요하고 따뜻한 것이라는 의미"이며 "우리 법이 추구해야 할 방향을 농축한 표현"이라는 설명을 들으면 그에게 이런 따뜻한 면도 있었나 싶기도 하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이 당시 정작 하고 싶었던 말은 다음에 나왔다. "법(法)이라는 한자는 물 수(水) 변에 갈 거(去) 자를 합한 것으로 법이 물처럼 국민 삶의 구석구석을 흘러 잘못된 관행을 씻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유전무죄 무전유죄'란 부끄러운 말이 더는 쓰이지 않도록 해달라고 법조인에게 당부하기도 했다.

법이 목욕탕이든, 물 수 변에 갈 거 자를 합한 것이든 요지는 평등성과 공정성이겠다. 박 전 대통령이 비유한 목욕탕이라는 것은 따뜻함 외에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그 앞에서는 모두 옷을 벗어야 한다는 평등의 의미도 담고 있다. 물 흐르듯 한다는 말 또한 자연스럽고 보편타당한 공정성이 핵심이란 의미일 터. 어찌보면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은 말들이지만 박 전 대통령 스스로에게 부메랑이 돼 돌아올 줄은 몰랐을 것이다.

법치의 수호자라는 헌법재판소의 이정미 재판관이 퇴임식에서 남긴 말이 새삼 화제다. 그는 한비자의 구절을 인용하며 "'법의 도리는 처음에는 고통이 따르지만 나중에는 오래도록 이롭다'는 옛 중국의 고전 한 소절이 주는 지혜는 오늘도 유효할 것"이라고 했다. 아무리 아픔이 뒤따르더라도 법을 행하는 데 결코 사사로움이 없어야 하는 게 진정한 법의 도리라는 걸 강조한 것. 그토록 법치와 약속을 강조해놓고 헌법을 송두리째 유린한 박 전 대통령에게 진정한 법치가 무엇인지 제대로 한 수 가르쳐 준 셈이다.

한비자 망징(亡徵)편의 '나라가 망하는 일곱 가지 징후'에는 이런 구절도 있다. '높은 벼슬자리에 있는 사람의 말만 따르고 많은 사람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으며 한 사람만을 요직에 앉히면 나라는 멸망한다'. 하긴 이런 경구들이 박 전 대통령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지금도 사저에서 '목욕탕'처럼 따스하게 자신을 품어주지 않은 야속한 법에 저주나 퍼붓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물 흐르듯 잘못된 관행을 씻어내야 한다'던 자신의 말도 기억하지 못한 채 말이다.

장재건 논설위원 jjk@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