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옛 소설이나 문헌을 보노라면 명마가 많이 등장한다. 무술로서는 당대에 당할 자가 없었다는 관우는 '적토마'를 타고 적진을 유린했다. '역발산기개세'로 널리 알려진 항우가 지독하게 아낀 말은 '오추마'다. 한나라 시대에는 피와 같은 땀을 흘리면서 뛴다는 '한혈마'가 유명했다고 한다. 이들 말의 공통점은 모두가 하루에 천 리는 거뜬히 달린다는 이른바 '천리마'다.

이 천리마를 체제 유지의 한 수단으로 응용한 곳이 북한이다. 1958년부터 북한은 '천리마 운동'을 전개했다. 말이 달리듯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사회주의 경제를 이룩하자는 취지에서였다. 이 구상은 김일성이 직접 발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이후 북한의 웬만한 사업에는 대개 천리마라는 이름이 달렸다. '새벽별 보기 운동'이나 '천 삽 뜨고 허리 한 번 펴기 운동' 등도 천리마 운동의 한 형태다. 그러나 이런 대대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체제의 경직성 등으로 인해 북한 경제가 낙후되어 있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북한에서나 빈번히 사용되던 천리마가 최근 우리 사회의 화제 단어로 등장했다. '천리마 민방위'라는 단체가 말레이시아에서 피살된 김정남의 아들인 김한솔을 보호하고 있다는 주장을 하면서다. 천리마 민방위는 홈페이지를 통해 김한솔과 가족들이 도움을 요청해왔으며 이들을 안전한 곳으로 옮겼다고 밝혔다.

그동안 알려진 바가 없었던 이 단체가 갑자기 관심을 끄는 데는 김 씨 가족 보호뿐 아니라 민방위라는 말이 사용된 것도 한몫을 했다. 잘 알다시피 민방위는 북한보다는 우리나라에서 더 친숙한 용어다. 이런 이유에서 일부에서는 천리마 민방위가 북한을 탈출한 이들이 만들었다기보다는 남한과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도 나온다. 이들은 천리마의 영문 표기가 북한식의 'Chollima'가 아니라 우리식의 'Cheollima'인 것 등을 근거로 들고 있다.

반면 설립 주체가 어딘가에 상관없이 북한 체제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도피를 돕는 조직이라면 적대시할 필요는 없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이 때문인지 이 단체가 홈페이지에 후원금을 위한 비트코인(디지털 가상화폐) 계좌를 공개한 이후 상당액이 모금된 것으로 전해졌다. 천리마 민방위가 실재하는 조직이라면 북한으로서는 눈엣 가시가 또 하나 생긴 셈이다. 김정남에 이어 김한솔까지 제거하려던 음모가 물거품이 돼버렸으니.

염창현 논설위원 haorem@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