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의사' 등장으로 의료계가 긴장하고 있다. 부산대병원이 인천 가천대 길병원에 이어 암 진단을 돕는 AI 의사인 '왓슨 온콜로지'를 지난 1월 도입했다. AI 의사가 머지않아 인간 의사의 역할을 상당 부분 대체할 거라는 전망도 나온다. 인간 의사와 AI 의사의 의견이 달랐을 때 상당수 환자가 왓슨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였기 때문이다. 길병원은 지난해 11월 중순 도입한 왓슨을 활용해 2개월간 대장암 위암 폐암 유방암 자궁경부암 등 5개 암 환자 85명을 처방한 내용을 공개한 결과 그랬다.
수십만 명의 환자 정보와 1500만 쪽에 달하는 방대한 의학 자료를 습득한 왓슨을 인간 의사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다. 불가능하다. 의사가 환자를 상담하고 나이와 몸무게, 조직검사 혈액검사 유전자검사 등 다양한 정보를 입력하면 왓슨은 의료데이터를 기반으로 불과 몇 초 만에 분석을 끝마친다.
다만 왓슨이 치료법을 제시할 수 있는 질환은 현재 5, 6개 암에 그친다. 환자 치료에 관한 최종 결정권은 AI 의사가 아니라 인간 의사에게 있다. 혹시 잘못이 생기면 그 책임 또한 인간 의사가 진다. 이 때문에 AI 의사는 자동차의 내비게이션이나 의료 현장에서 폭넓게 활용되는 자기공명영상(MRI), 컴퓨터단층촬영(CT)처럼 인간 의사를 도와주는 '똑똑한 조력자' 역할에 그칠 것이라는 반론도 있다.
어쨌든 AI 의사의 등장으로 인간 의사의 입지가 좁아질 것이라는 데는 환자도 의사도 이견이 없다. AI 의료시대를 맞아 의사의 역할과 위상을 새롭게 정립해야 할 것 같다. 인간 의사가 의료환경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면 환자들로부터 외면받고 AI 의사에게 밀려 도태될 수밖에 없다. 이런 불행한 사태를 막으려면 AI 의사가 도저히 할 수 없는 환자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의사 본연의 역할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인술(仁術)을 베풀었던 장기려 박사, 이태석 신부처럼 말이다.
"끝으로 저의 동료 의사들에게 감히 한 말씀 올리겠습니다. 저는 환자가 제 진료실에 들어오면 1~2분은 아무 말 하지 않고 환자의 눈을 보는 습관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환자의 눈을 통해서 어느 정도의 질병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환자와 제가 어느 정도의 인간적인 교감을 통해서 서로 신뢰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매일 병실에서 이루어지는 환자들과의 만남을 질병 치료를 위한 단순한 만남이 아닌 인간의 영혼과 영혼이 만나는 고귀한 만남으로 승화시키는 의사분들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이태석 신부가 아프리카 수단에서 의료봉사활동을 벌이다가 암에 걸려 선종하기 직전인 2009년 12월 17일 '제2회 한미 자랑스러운 의사상' 시상식이 참석해 밝힌 수상 소감이다. 인제대 부산백병원 의과대에서 열리는 세미나를 취재하러 갈 때마다 이태석 신부 기념관에 걸린 이 글을 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AI 의료시대일수록 환자들은 장기려 이태석 같은 가슴 따뜻하고 환자와 소통하려는 의사를 원하지 않을까.
마이크로소프트(MS) 사티아 나델라 최고경영자가 "AI가 보급된 사회에서 가장 희소성을 갖는 것은 타인과 공감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인간"이라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윈도 운영체제(OS)를 개발하면서 컴퓨터 시대를 연 MS는 AI가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자 지난해 여름 '사람과 인공지능의 공(共)진화'라는 개발 철학을 내놨다.
환자와 진심으로 소통하며 몸과 마음을 낫게 해주려고 애쓰는 의사가 적지 않다. 웰니스병원 강동완 병원장은 환자의 마음까지 어루만져야 진정한 치료라는 생각에서 2007년 3월 7일 시작해 10년째 매주 토요일 오전 10시 병원 로비에서 '웰니스 작은 음악회'를 열고 있다. 지난달 500회를 맞았다. 강 원장은 "최고의 병원이 되기보다 '울고 들어왔다가 웃으며 나가는 병원'을 지향한다"고 말했다. 동아대병원 순환기내과 박종성 교수의 외래진료는 오전 9시에 시작해 오후 2시30분께, 오후에는 2시에 시작해 6시30분께 끝난다. 심장병에 관해 궁금해하는 환자들의 질문을 끊지 않고 이해할 수 있게 충분히 설명하다 보면 식사를 거르기 일쑤다. 통상 대학병원의 '3분 진료'와는 거리가 멀다.
AI 의료시대에 장기려 이태석의 후예가 더 많이 나오길 기대해본다. AI 의사를 이기는 길은 인술이다.
의료과학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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