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비선조직의 국정 농단으로 야기된 탄핵정국이 정치적 이슈를 넘어선 지 이미 오래다. 정치, 경제적 불확실성 및 계층 간 이데올로기적 갈등이라는 예견된 후유증을 초래한 채 온 나라가 오리무중 속에 갈팡질팡 중이다. 그 출구가 보이지 않는 형국 속에 정치, 경제, 사회를 망라한 총체적 난국의 그림자가 엄습하고 있다. 국가 신인도가 하락하고 수년째 이어져 오는 저성장과 미국 트럼프 정부의 보호무역주의 정책 등으로 우리나라가 수출 분야에서 전년도보다 2계단 아래인 세계 8위로 그 위상이 낮아졌다는 뉴스는 우리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요양병원계도 어수선한 시국만큼이나 현실적인 어려움으로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우선 여러 차례 건의에도 불구하고 지난 2월 3일 공포된 의료법 시행규칙 의료기관 시설기준 강화가 그것이다. 여기에 따르면 요양병원의 경우 입원실의 시설기준을 최대 1개 병실당 6개 병상 이내로 하되 그 면적을 1인실은 6.3㎡에서 10㎡로, 다인실은 1인당 4.3㎡에서 6.3㎡로 하고 병상 간 이격 거리는 기존 병원은 1.0m, 신·증축 병원은 1.5m를 유지해야 한다. 300병상 이상의 병원에는 샤워시설을 갖춘 격리병실 1개 이상을 갖추어야 한다.
운영 중인 모든 요양병원은 유예기한인 2018년 12월 31일까지는 개정된 시설기준에 맞춰 개선해야만 한다. 그러나 이미 소방시설법 시행령 개정으로 2018년 6월 30일까지 스프링클러를 비롯한 소방 설비 설치에 많은 비용을 투입해 공사가 진행 중에 있으며 만성기병원인 요양병원까지 확대 적용 중인 야간 당직의료인 운용 등 여러 규제가 한꺼번에 몰려오다 보니 요양병원계는 몸살을 앓고 있다. 더구나 의료시설 강화로 기존 병원의 병상 수가 적게는 20%에서 많게는 30% 정도 줄어들 것으로 예상돼 안 그래도 과당경쟁과 규제강화로 많은 어려움을 겪는 요양병원들이 만성적자에 따른 도산으로 이어지지 않을지 걱정된다. 물론 무엇보다도 환자들의 안전과 의료 질 향상을 담보하기 위한 당연한 조치로 그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시설개선에 필요한 정부의 보상 지원체계도 전혀 없이 병원에만 모든 책임을 떠넘기며 기한을 정해 반드시 시행하라는 조치는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우리는 그동안 특별한 사건, 사고가 발생하면 그때마다 사후약방문처럼 관련 법령을 개정하거나 지침을 내려 일방적으로 따라올 것을 강요하는 경우를 많이 겪었다. 시행에 앞서 청문회 설명회 등을 통해 이해 관계자들의 다양한 의견을 청취하거나 전문가들의 심도 있는 연구와 논의를 통해 합리적인 결과를 도출한다면 모두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정책이 나오지 않을까.
앞으로 정책 변경이나 규정 개정 등의 필요성이 발생하면 충분한 여론 수렴 기간을 정해 관련자들의 다양한 의견을 청취하고 적용 범위, 지원 방법, 시행시기와 방법 등을 세밀하게 논의하고 결과를 도출함으로써 모두가 만족하는 최적의 대안이 나오길 기대한다.
요즘 병원 운영에 고심하고 있는 경영진을 만나면 '올 것이 왔다'거나 '정말 힘들다'는 한탄 일색이다. 국내 경기침체와 맞물려 의료기관의 경영악화가 얼마나 심각한지 피부에 와 닿는다. 급성기병원은 낮은 수가에도 비급여와 의료 외 수익 등으로 그나마 병원 경영의 어려움을 들 수 있겠지만, 포괄수가제를 기본으로 하는 요양병원에는 저수가와 인건비 상승, 병상 수의 공급과잉, 간호사를 비롯한 의료 인력확보의 어려움, 규제강화 등 여러 문제가 겹쳐 매우 어려운 실정이다. 필자도 이를 극복하기 위해 수년 전부터 의료법인 산하 네트워크형 요양병원으로 병원운영을 시스템화해 의료서비스 양 확대를 위해 노력해오고 있다. 또 초고령사회를 대비한 실버산업 관련 유망사업과 현재 노인의료 선진국에서 시행하는 의료와 복지를 한 시스템으로 운영하는 의료복지복합시스템 도입을 추진 중이다.
이제 요양병원도 전문경영이 필요한 때다. 전문 경영활동을 통해 효율적인 이익 창출이 이루어져야 의료의 질 향상을 통한 만족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병원이 만성적자에 빠지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에게 돌아간다. 급속한 고령사회로 접어들고 있는 우리나라는 지난 몇 년간 노인 요양병원의 기관 수가 눈에 띄게 증가했다. 전략적 경영분석을 통한 접근보다는 너도나도 일단 뛰어들고 보자는 성급한 판단과 사회분위기에 편승한 결과다. 요양병원계의 고통이 가중되는 현실이 안타깝기는 하나 요양병원이 노인의료의 한 축으로 당당히 그 위상을 인정받고 있다는 사실을 위안 삼아 스스로 자정노력과 전문적인 경영능력의 향상에 몰두해야 한다.
요양병원도 생존의 길을 모색해야 하는 시기를 맞게 되었다. 어려울 때일수록 각자도생보다는 공생의 길을 찾아야 하며 그 길은 '너는 너, 나는 나'가 아닌 우리라는 생각으로 진정성 있는 소통과 양보가 전제되어야 한다고 본다.
나라·동일의료재단 나라병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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