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마지막 날. 서부산권인 강서·사하·사상·북구의 대규모 개발 사업 현장을 찾았다. 국제신문 신년기획 '2030 서부산이 미래다' 시리즈를 취재하기 위해서다. 주민들의 내밀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먼저 찾아간 곳은 강서구 대저 1동 강서구청 앞. 5년째 동네일을 맡고 있는 김동주 통장이 운영하는 식당을 찾았다. 부부가 방에서 아침을 먹다가 기자를 맞았다. 김 씨는 '부산시가 대저 1동 일대에 공항복합도시를 추진한다'는 기자의 설명에 "개발 광풍이 불면 외지인만 이익을 보고 원주민은 다 쫓겨나더라. 당장 우리 부부도 집이 수용되면 갈 곳이 없다. 원주민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개발은 없느냐"고 한숨을 쉬었다.

강서구는 오랫동안 개발제한구역에 묶여 재산권 행사에 제약을 받았다. 2013년 그린벨트에서 풀렸는데 지난달 26일 부산시는 대저 1동 일대를 토지거래허가구역과 개발행위허가제한지역으로 다시 묶었다. 공항복합도시 건설을 앞두고 부동산 투기를 막기 위한 조치였다.

잊지 못할 장면도 있었다. 서낙동강 옆 신도시 건설이 진행 중인 에코델타시티 현장을 찾았다. 커다란 철제 펜스가 외지인의 접근을 막았다. 우연히 펜스 뒤로 들어가는 길을 찾았다. 황량한 벌판에 아직 철거되지 않은 몇 채의 빈집이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풍겼다. 개들과 까마귀만 남은 그곳에서 갑자기 삼겹살 냄새가 났다. 놀랍게도 한 집에 사람이 살고 있었다.

대문을 두드렸더니 중년 여성이 문을 열었다. 좁은 마당에 10여 명이 둘러앉아 2016년 마지막 햇살을 받으면서 삼겹살 파티를 하고 있었다. 중년 여성은 "언제쯤 철거가 되느냐"는 기자의 말에 슬픈 눈으로 대문을 닫았다. 기자도 더는 질문할 수 없었다. 그 모습은 영화 속 한 장면과 묘하게 오버랩됐다. 영화 '초록물고기'에서 막동(한석규)이 군 제대하고 가족들과 소풍을 간 대목이다. 예전 논밭이 있던 자리에 고층아파트가 들어서고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막동이 제대하자 모처럼 모였다가 사소한 시비로 싸우던 장면이 병신년 강서구 에코델타시티에서 기억났다.

개발로 고층빌딩이 들어설수록 그에 따른 그늘도 짙어진다. 급격한 현대화와 도시화는 수많은 아우성을 낳았다. 조금 멀리 보면 1988년 서울올림픽을 치르면서 수많은 달동네 주민들이 쫓겨났고 가까이에서 살펴보면 부산 해운대에서 아파트촌 건설에 저항하던 원주민들이 사라졌다.

이제는 서부산이다. 부산시는 서부산권에 2030년까지 65조 원을 투입해 글로벌시티를 조성한다는 그랜드플랜을 세웠다. 부산의 마지막 남은 미개척지, 동부산에 비해 개발이 더딘 서부산을 대대적으로 개조하겠다는 것이다.

엄청난 사업 앞에서 신음하는 주민이 적지 않다. 앞서 소개한 사람들뿐만 아니다. 김해공항 주변에서도, 사상공업단지에서도 비슷한 사람들을 만났다. 개발의 광풍 앞에 선 힘없는 주민들은 울분을 토했지만 결국 포크레인을 앞세운 개발세력에 제대로 저항도 못 하고 자취를 감출 것이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올려다보기도 힘겨운 고층 건물이 숲을 이룰 것이다.

무작정 개발을 반대할 생각은 없다. 다만 숨을 고르면서 누구를 위한 개발인지 한 번쯤 생각은 해야 할 것 같다. 원주민이 눈물을 떨구면서 사라진 자리를 돈 많은 외지인이 차지하는 것은 개발이 아니다. 그런 무자비한 개발이 20세기까지 이어진 것으로 충분하다. 21세기에는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개발이 필요하다. 그 시험대가 서부산이다.

사회1부 차장 kuki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