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도로를 지역주민에게 돌려주라."
2009년, 일본에서는 1955년 자민당 집권 이후 64년 만에 정권이 야당인 민주당으로 넘어가, 실질적으로 최초의 정권교체가 이루어졌다. 여기서 실질적이란 표현을 쓴 것은 1993년 연립정권에 자민당이 정권을 내준 적은 있지만, 이때는 자민당이 제1당의 지위를 잃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토야마 유키오가 이끈 민주당이 참신한 선거공약으로 장기불황과 자민당 장기집권에 대한 염증을 가진 국민의 표를 이끌어내 확실한 정권교체를 이룬 것이었다. 민주당은 '주민생활을 최우선으로'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낭비 예산 일소, 자녀교육, 연금·의료, 지역주권, 고용·경제의 5가지 분야 공약을 제시하여 국민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이 중 특히 시선을 끈 공약이 지역주권 분야의 '고속도로 무료화로 활력 있는 지역경제를 만든다'였다.
고속도로 무료화가 지역경제 활성화와 무슨 관계가 있을까? 물론 고속도로 무료화는 지역 간 이동비용을 줄임으로써 사람의 이동과 지역상품의 유통을 확대하고, 지역 관광을 활성화하며, 토지가격이 싼 지방으로 기업진출을 확대하는 경제적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보다 주목해야 할 것은 전국을 연결하는 고속도로가 개방되어 지방도로와 연결되면 진출입구가 되는 지방도로 주변마다 새로운 상권을 형성한다는 점이다. 고속도로를 중심으로 전국 지방마다 새로운 비즈니스와 개발의 기회가 생긴다는 것이다. 미국의 예를 보자. 미국의 고속도로와 자유롭게 연결된 지역도로 주변마다 지역 상권이 발달해 있다. 미국의 고속도로는 원칙적으로 통행료를 받지 않기 때문에 고속도로와 작은 도로들이 만나는 진입로가 많다. 고속도로 진출 입구마다 음식점, 주유소, 편의점, 호텔 등을 알리는 커다란 안내 간판이 서 있다. 소비자들은 고속도로 주행 중 편하게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식사와 주유를 마치고 다시 고속도로를 자유롭게 탄다. 이 때문에 고속도로를 중심으로 그 주변에는 각종 편의 시설을 갖춘 상가가 형성되고 또 고속도로 이용이 편해서 주변에 창고, 공장 등 산업체들이 들어서게 된다.
그뿐만 아니라 고속도로 무료화는 도시민에게도 통근 비용 감소라는 혜택을 가져다준다. 당시 일본은 일반 국민이 매년 최대 25조 원의 혜택을 볼 것으로 추산했다. 이 생활비용 절감은 궁극적으로 가계의 소비증가와 기업의 설비투자 확대로 이어질 것이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 이 공약은 국민의 관심을 끄는 데는 성공했지만, 단계적인 정착방안은 지연되고 있다. OECD 국가 중 최고 수준인 재정적자가 발목을 잡았다. 고속도로를 지방도로와 연결하여 개방화하기 전 단계로 통행료 할인을 하던 중인 2011년, 일본 동북지방에서 대규모 지진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되자, 지진피해 복구재원을 동원하기 위해 고속도로 할인제 시행을 연기한 것이다.
고속도로를 건설하고 운영하는 도로정책은 나라마다 다양하다. 미국은 개방형을 택한 반면, 우리와 일본은 폐쇄형으로 운영하고 있다. 폐쇄형 고속도로는 통행료를 징수하는 톨게이트가 있는 연결 진출입로가 한정되어 있다. 또한 고속도로 주행 중에는 식사, 주유 등의 문제는 고속도로 관리 공단이 운영하는 한정된 휴게소에서만 가능하다. 이들 휴게소는 관리공단의 관리하에 운영되기 때문에 지역주민의 후생과는 관련이 없는 것이다.
이제 지역 활성화 방안의 하나로 고속도로를 지역주민에게 돌려주는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해 보아야 한다. 고속도로 무료화는 지역주민의 편익, 소득증대는 물론 분배, 일자리 창출, 경제 활성화에도 도움을 줄 것이다. 이 점에서 국고에서 고속도로 유지비용을 지불하더라도 이로부터 얻는 이익은 훨씬 크다.
지금 우리 경제는 저성장의 늪에 빠져 있다. 우리의 경제 성장이 세계 평균 성장률 수준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가 되어 버린 것이다. 이 때문에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는 일은 매우 시급하다. 경제 활성화의 한 축은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하는 첨단 스타트업, 창업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국가 간 기술경쟁의 심화, 보호무역의 팽창 등 어려운 국제환경과 지역 간, 계층 간 격차문제를 고려한다면 첨단 분야만으로 충분치 않다. 내수를 통한 전통 분야에서의 경제 활성화도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고속도로 무료화는 통행료 절감뿐 아니라 전국 각 지방의 새로운 상권개발로 내수, 지역경제 활성화에 큰 몫을 할 것이다.
한국IR협의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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