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지인 K가 평소 타고 싶었던 5000만 원 상당의 수입차를 샀다. 월급이 그리 많지 않은 계약직 사원인 K는 회사 생활도 우울한데 평소 사고 싶었던 차를 일단 샀단다. 주변에서는 차라리 전셋집을 구하거나 미래를 위해 저축을 하라는 핀잔을 들었다. 하지만 K는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자신의 선택에 후회 없단다.
불투명한 미래를 위해 투자하는 대신 현재의 즐거움을 위해 아낌없이 소비하는 '욜로(YOLO·You Olny Live Once)' 라이프가 유행하고 있다. 미국 오바마 전 대통령이 건강보험 개혁안 '오바마 케어'를 독려하기 위해 셀카봉을 들고 만든 2분짜리 영상에서 직접 "Yolo, man"이라고 외쳐 화제가 되기도 했다.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가 출간한 '트렌드코리아 2017'은 올해 국내 소비시장을 대표할 키워드로 욜로라이프를 선정했다. 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 불분명한 미래를 걱정하기보다는 현재의 집중하는 2030 세대의 소비성향을 반영했다. 욜로족의 흐름이 가장 강하게 나타나는 것은 여행 분야다. 가계부채가 사상 최악으로 늘어나고 있지만, 설 연휴 인천공항 일평균 이용객이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개별여행이 많이 늘고 자기만의 의미와 즐거움을 찾을 수 있는 곳을 방문하는 이가 많다.
뮤지컬이나 클래식 등 값비싼 공연을 나 혼자 여러 차례 보기도 한다. 실제 국내 최대 공연 예매사이트인 인터파크에 따르면 전체 구매 건수(뮤지컬·연극·콘서트 등)에서 1인 1매 티켓이 차지하는 비율이 2005년 11%에서 지난해 43%로 늘어났다고 한다.
일부는 욜로족이 현실을 즐기기에만 집중하다보니 허세적 소비에 빠지는 게 아니냐고 우려한다. 하지만 이들의 소비는 경험을 중요시한다는 점에서 충동구매나 사치와는 다르다. 명품 가방 3개를 사는 것보다 한 번 떠난 여행에서의 체험이 우리 삶을 송두리째 바꾸기도 한다.
미래를 위해 아끼고 저축했던 기성세대들은 이런 트렌드가 이해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기성세대가 고생한 만큼 미래가 보장될 것이라는 믿음으로 살아왔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욜로족들은 '미래'를 위해 살았던 우리에게 오늘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게 해줬다.
신조어는 시대상을 반영한다. 이런 욜로라이프가 유행하게 된 배경에는 장기불황과 취업난 등 힘든 현실과 보장되지 않은 우울한 미래가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지난해 8월 한국감정원과 통계청 자료를 토대로 조사한 결과, 젊은 가구주들이 16년간 세금을 제외한 소득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서울 소재 평균가의 아파트를 살 수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청년들이 치열한 경쟁을 뚫고 취업을 한 뒤에도 학자금 대출 등 빚을 갚다보면 내 집 마련은 정말 꿈같은 일이다. '노력하면 잘 살 수 있다' '누구에게나 균등한 기회가 주어진다'는 말이 허망하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우리 사회에 회자되는 '흙수저' '금수저' 논란은 세습되는 부의 불평등 문제에 관한 것이다. 부유층이 온갖 편법으로 증여세와 상속세를 회피해 부를 상속하면서 또다시 국민들은 상대적 박탈감과 패배의식을 느끼게 된다. '정유라 특혜'처럼 대입이나 취업, 승진에서도 본인의 능력·노력과는 별개로 부모의 경제력이나 능력이 영향을 미친다. 교육마저 더는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되지 못하면서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은 사라질 위기다.
전문가들은 이제 우리 사회가 자유로운 계층 이동이 가능한 개방된 자본주의가 아니라 이것이 차단된 '세습적 자본주의'로 향하고 있다고 경고한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국민 10명 가운데 6명 이상이 계층이동 가능성을 믿었지만, 지금은 겨우 2명에 불과하다. 이런 암울한 현실을 두고 젊은 세대들에게 미래를 위해 무조건 현재를 희생하라고 할 순 없다. 이런 사회적 비관론은 사회 갈등뿐 아니라 성취 욕구를 떨어뜨려 경제 위축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저출산 고령화 대책, 빈부 격차 축소 등 성장개혁과 분배개혁을 추진해 경제 발전 동력을 되살려야 할 때다.
인간은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을 것이라는 희망을 갖도록 노력하며 산다. 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제자리걸음이고 노력에 따른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한다면 좌절감에 빠질 수밖에 없다. 현실을 즐겁게 보내자는 욜로라이프 이면에 엿보이는 우리 시대의 단면은 씁쓸하다.
독자여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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