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는 다양한 종의 유기 생명체가 쾌적하게 살아갈 수 있는 특별한 행성이다. 그러나 46억 년 전 태초의 지구는 비 오듯 쏟아지는 운석들의 충돌에 의한 열과 메탄, 암모니아, 이산화탄소, 수증기와 같은 온실가스로 가득 찬 대기로 생명체가 살 수 없는 뜨거운 마그마의 바다를 이루고 있었다.
운석 충돌이 줄어들면서 지구는 식기 시작해 약 40억 년 전에는 대기의 수증기가 응축되면서 최초의 비가 내렸다. 이 비는 지구를 빠르게 냉각시키고, 엄청난 양의 새로운 수증기가 응축되어 대홍수로 바다가 탄생하였다. 생명의 근원인 바다의 탄생은 지구 위에서 발생한 가장 경이로운 사건임에도 지질학적 시간 개념에선 매우 짧은 시간 동안의 사건이었다.
35억 년 전 바다에는 또다시 경이로운 사건이 발생한다. 원시 대기에 풍부했던 메탄과 암모니아가 합성되어 최초의 생명체가 탄생하였다. 당시 황화수소를 섭취해 부산물로 산소를 생성하는 시아노박테리아와 같은 광합성을 하는 생명체가 존재하였다. 이들에 의해 만들어진 산소는 처음에는 원시 해양에 풍부하였던 철 원자와 결합하여 산화철로 소비되어 바다를 붉은빛으로 물들였다. 이때 퇴적된 산화철은 철광석이 되었다. 광합성 생명체가 증가하고 바닷속 철의 대부분이 산화된 약 25억 년 전부터 산소가 대기 중으로 방출되었다. 그 이후 산소의 양이 증가하여 현재 전체 대기 조성 중 산소가 20%가량 차지하고 있다. 지구에 산소가 만들어져 대기 중에 유입되기까지는 10억 년의 긴 시간이 필요했으며, 산소는 가시광선에 흡수되어 오존(O₃)을 형성하고 성층권에 농집되었다.
마그마의 바다로 시작된 지구는 중력에 의해 무거운 원소는 중심부로 가라앉고 가벼운 원소는 떠올라 층상구조가 된다. 지구 중심은 5000도 내외의 용광로와 같은 뜨거운 핵으로 구성되며, 딱딱한 암석질 지각에 둘러싸여 있다. 자전에 의해 회전하는 핵은 용융 상태의 금속 물질로 이루어져 발전기와 같이 전류를 발생시켜 자기장을 만든다. 만약 핵 내부에 이러한 철의 흐름이 없었다면 지구자기장은 사라져버릴 것이며, 대기를 파괴하는 치명적인 우주선(태양풍)을 막지 못해 생명체는 결국 멸종할 것이다.
지구 내부의 열은 끊임없이 지표로 이동하며 방출되고자 한다. 이로 인해 지각은 깨어져 여러 개의 판으로 나누어져 운동하게 된다. 판 구조 운동은 판들을 부딪치게 하고 지각을 융기시켜 대륙을 만든다. 만약 딱딱한 지각과 뜨거운 핵이 없었다면 판 구조 운동은 사라지고, 지구에는 고독한 바다만 존재할 것이다. 판 운동은 비록 지진 화산과 같은 자연재난을 발생시키지만, 이 활동이 없었다면 인간과 같은 육상 생명체는 존재할 수 없었다.
태양계에 속하는 지구는 적절한 크기를 가지고 적절한 위치에 존재한다. 지구가 지금보다 크다면 중력이 커져 거대 행성의 대기와 같이 주로 가벼운 원소인 수소나 헬륨과 같은 원소로 이루어질 것이며, 작았다면 중력이 작아 산소와 수증기가 우주 공간으로 흩어져 대기가 없는 수성 같은 행성이 되었을 것이다. 또 지구가 지금보다 태양 쪽으로 가까이 위치했다면 지표가 뜨거워 생명체가 살기 어려울 것이며, 멀어지면 너무 추워져 해양은 얼어버리고 순환이 멈춰 많은 생명체가 사라질 것이다.
지구는 적절한 크기와 위치를 가지며, 지질시대 동안 적절한 사건들을 겪으면서 지금 생명체가 살아가기에 '딱 적절한' 환경으로 발달한 특별하고 축복받은 행성이다.
오래전 지구는 급작스러운 환경 변화로 수많은 생명체가 사라지는 대멸종 사건을 여러 번 경험했다. 대표적으로 6500만 년 전 멕시코 유카탄 반도에 지름 약 10㎞의 운석이 시속 9만 ㎞의 속도로 떨어져 지구는 대화재로 다량의 먼지가 대기로 유입되어 전 지구적인 냉각이 발생하였다. 뒤이은 대기의 이산화탄소, 수증기, 황산화물에 의해 산성비와 함께 온난화가 발생해 공룡을 비롯한 전체 동식물의 70%가 멸종하였다. 그러나 지금 인류와 같이 지구 위의 생명체 스스로가 '딱 적절한' 지구환경을 파괴시켜 멸종 위기에 빠진 사례는 없었다.
지구는 대멸종 사건을 여러 번 겪었지만 변함없이 생동하고 있으며, 대멸종 뒤에 훨씬 고등한 생명체를 탄생시켰다. 따라서 인류는 우리에게 '딱 적절한' 지구 환경을 보존하고자 하는 필사적인 노력으로 이곳에서 오랫동안 살아갈 수 있기를 감사한 마음으로 소원해야 한다.
부산대 지질환경과학과 교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