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안 근교의 소금 공장을 구경했다. 지하수를 퍼 올려 사각형 솥에 붓고 장작불을 때면 물은 증발하고 솥 안에는 소금이 쌓였다. 지하수를 반복적으로 퍼다 붓고 불을 때서 물을 증발시키기를 수없이 반복, 그래서 얻는 소금 알의 굵기는 새끼손가락 한 마디의 반 굵기 정도는 족히 돼 보였다.
서해안 염전만 보아왔던 나로서는 지하수를 증류해 소금을 얻는 광경이 처음이라 신기했지만 덜컥 걱정이 앞섰다. 그것은 이 신기한 광경이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인간이 개발의 당위성을 기치로 내건 후 우리 주변이 너무나도 달라지고 변했기 때문이다. 비록 소금 공장은 아니지만 연산동의 미나리꽝들과 연밭들이 깡그리 사라지고, 곡창이었던 김해의 평야가 하루아침에 아파트 숲으로 바뀐 것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소금이 없으면 사람이 살 수 없으니 그 소금 공장은 내내 보전될 것이라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도 있는 듯하지만, 쌀이 없으면 사다 먹으면 되고 그 쌀을 생산하던 곡창 지대에 집을 지어 파는 것이 '현실적'으로 더 이익이 된다는 생각이 사람들을 지배하면 황금알을 낳는 오리의 배를 가르겠지. 소금은 비엔티엔 한적한 교외에서 물을 끓여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 어딘가에는 소금이 남아돌고 있으며 그것을 사다 먹으면 된다는 논리를 펴면서. 소금이 단순한 음식의 하나가 아니라 소금을 얻기 위한 거친 노동과 비밀스러운 과정의 보존이 사회의 영혼을 썩지 않게 하는 소금의 역할인 것을 지금 알 수는 없는 것일까?
비엔티안에서 13번 국도를 따라 북상하다 사야부리로 가기 위해 좌회전을 하자 그때부터 국도에는 번호가 없었다. 그저 메콩 강을 따라 서쪽으로 달리다 북상하는 길이 나오면 진로를 바꿀 수밖에. 아스팔트가 끊어진 삼거리에 북상하는 길은 비포장이었다. 미리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나는 비엔티안을 출발할 때부터 250cc 모터사이클을 타고 있었다. 흙먼지를 날리며 비포장 길을 시속 100㎞ 이상 달리기 위해 멀리 라오스까지 온 것이다.
비포장 길이 100㎞ 이상 있더라는 소문을 듣고 왔는데 실제는 20㎞ 남짓. 달리고 싶은 흥분이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다시 서쪽으로 기수를 돌려 꼬불꼬불한 산길 속의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며 푸른 하늘과 구름 보기를 수없이 반복하면서 도착한 것이 메콩 강의 선착장. 강을 건네주는 배에서 내리자 거기에는 루앙프라방의 목전까지 이어지는 4번 국도가 기다리고 있었다. 4번과 13번 국도가 만나는 곳에서 4번 국도는 자신의 명을 다하고 남북으로 달리는 13번 국도가 북으로는 중국과 경계인 '나튜이', 남으로는 캄보디아와 국경인 '베운 캄'까지 이어진다. 라오스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길이자 이 길 위에 비엔티안과 방비엥과 루앙프라방 같은 도시들이 자리 잡고 있다.
사야부리에서 루앙푸라방 가는 길은 2시간 반이면 족했다. 하지만 일부러 길을 둘러 7시간 반짜리 여정을 택했다. 산으로 산으로만 달리는 길이었다. 지난 10월 아내와 함께 달린 길이었지만 완전히 다른 길이었다. 그때는 버스 속에서 자고 있었고 이번 여행은 온몸으로 바람을 맞으며 달리고 있다. 오르막 내리막마다 떨어지는 눈부신 햇살을 버스 속에서는 보지 못했다. 아이들이 모터사이클의 굉음에 반응하며 손 흔들며 보여줬던 맑은 눈동자도 이전에는 만나지 못했다. 마차와 말이 다르듯 버스와 모터사이클 역시 이렇게 다르다. 있는 그대로의 냄새와 바람과 햇살 그리고 풍광을 느끼기 위해서는 걷든지, 자전거를 타든지, 모터사이클로 질주해야 한다. 그래야 훨씬 강렬한 생동감이 있다.
방비엥의 작은 가게 앞에 바이크를 세웠을 때 동료가 말했다. 저기 걸려 있는 플라스틱 화분에 심어 놓은 양란이나 바닥에 아무렇게나 놓여 있는 화분의 꽃들을 보고 뭐 느낀 것이 없냐고. 느닷없는 질문과 어디서나 보던 것이라 별로 느낀 것이 없다고 하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세상의 가난한 곳에 가면 없는 땅에 깡통 하나라도 있으면 주워다 흙을 담아 꽃을 지천으로 피워내고 그것을 집 앞이나 길거리에 내어놓더라는 것이다. 하나같이 나누더라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우리의 산복도로의 골목골목에서나 영도 절영도 골목의 어디를 가나 만나는 풍경이 세상 어디서나 만나는 공통된 모습 중의 하나인 셈이다.
그러고 보니 요즘 신문 방송에 화제가 되는 모든 곳은 담 높은 곳과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인 셈이다. 모든 이와 함께 나누는 것이 아닌 특정한 한 사람과 나누려고만 하다가 생긴.
사진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