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조윤선 문화체육부 장관이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및 위증 혐의로 한꺼번에 구속됐다. 특검은 두 사람을 문화예술인 지원 배제 명단인 '블랙리스트'의 총지휘자와 실행자라 의심한다. 특검은 블랙리스트를 자유민주주의의 핵심 가치인 사상·표현·언론의 자유를 침해한 반헌법적 중대 범죄로 규정했다. 양심의 자유(19조),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21조), 학문과 예술의 자유(22조)는 헌법이 보장한 권리다. 여당인 새누리당이 "참담하고 송구스럽다"며 고개를 숙이고 야당이 "블랙리스트 의혹의 최종 몸통은 박근혜 대통령"이라며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다.

특검은 블랙리스트의 단초를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로 보고 있다. 세월호 부실 대응 비판 여론이 거세자 김 전 실장 지시로 조 장관이 수석으로 재직하던 정무수석실 산하 국민소통비서관실에서 블랙리스트가 처음 작성됐고, 교육문화수석실을 거쳐 문체부로 내려가 실행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특검은 박 대통령이 블랙리스트 작성을 지시했느냐 여부를 가릴 태세이지만, 박 대통령 측은 정반대다. '박 대통령은 블랙리스트 작성을 어느 누구에게도 지시한 일이 없다'는 것이 박 대통령 변호인단 주장이다. 게다가 박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한 달 뒤 블랙리스트 작성을 지시했다는 특정 언론사 보도를 '허위'로 규정하고 형사고소 및 민사상 손해배상 소송 제기 방침을 밝혔다. "특정 세력은 여론조작을 그만 둬라"고 까지 했다. 특검 수사에 반격을 가한 격이나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 한다는 지적을 자초하고 있다.

김 전 비서실장과 조 장관의 추락은 본인들의 혐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국정 농단의 비루한 이면에 다름 아니다. 특검의 지적대로 블랙리스트는 민주 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권력의 횡포다. 김 전 실장은 2013~2015년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내며 '왕실장'으로 불릴 만큼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다. 특검은 그가 블랙리스트의 총지휘자라는 입장이니, 그 권력을 국민을 위해 사용하지 않고 정권을 위해 휘두른 셈이다. 특히 고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비망록에 따르면 김 전 실장은 사법부 길들이기,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 세월호 관련 여론 조작 등 논란의 여지가 다분한 여러 사안에 간여한 의혹이 짙다. '법률 미꾸라지'라는 오명 속에 국정 농단의 장본인인 최순실과의 관계를 한사코 부인한 점만으로도 그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조 장관은 현직 사상 처음으로 특검에 구속되는 불명예를 떠안았다. 청문회에선 모르쇠로 일관했고, 컴퓨터를 폐기하는 등 증거인멸 의혹까지 사고 있다. 조 장관은 법원이 구속영장을 발부하자 사표를 냈다. 초대 여성가족부 장관과 청와대 정무수석에 이어 지난해 문체부 장관에 오른 현 정부 신데렐라는 수의를 입고 특검 조사를 받는 신세가 됐다.

특검의 박 대통령 대면조사에서 뇌물수수 의혹과 함께 블랙리스트 의혹 추궁은 불가피하다.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블랙리스트에 대해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했던 박 대통령이다. 블랙리스트 작성·관리와 관련해 구속된 인물이 5명으로 늘었다. 그런데도 박 대통령이 블랙리스트 존재를 몰랐다면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