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제(徒弟)란 장인이 되기를 희망하여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 전문적 지식을 가진 스승의 밑에서 일하던 중세시대의 어린 직공이나 견습생을 말한다. 도제가 되고자 하는 이는 스승과 수업계약을 맺고 수업료를 지불하기도 하며 스승과 같은 생활환경에서 기거하며 온갖 허드렛일도 하면서 기술을 습득한다. 때로는 스승으로부터 일상의 옷가지나 음식을 제공받고 약간의 용돈도 받으며 기술을 배우기도 한다. 이러한 연유로 도제는 자신의 사생활이나 사상에 이르기까지 엄격한 지도를 받는다.

아직도 이러한 도제식 교육을 받는 대표적인 기술로 의술을 들 수 있다. 법관이나 도공들도 비슷한 길을 걷는다. 도제는 스승의 좋은 기술과 법도를 이어받아 그 전통을 계승한다. 도제의 기술 습득 과정에서 스승의 지혜와 훌륭한 기술을 배우는 과정을 소위 사술(師術)이라 일컫는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오랫동안 스승과 같이 생활하게 된 도제는 스승의 습관이나 버릇 혹은 성격까지 그대로 빼닮기도 하고 스승의 기술을 바탕으로 더 발전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의술의 계승 과정에는 철저하고도 과학적인 '증거중심의학'이 이러한 교육의 밑바탕이 돼야 한다. 증거중심의학의 근간은 검증된 과학적인 가치기반에서 비롯되는 기본적인 정보에서 출발한다. 최고 전문가의 의견과 기발한 아이디어에서 자연히 '증례 보고'가 나타나고 이를 토대로 대조군 연구가 이뤄지게 된다. 대조군 연구 이후에는 연구 문헌에 대한 비평적 분석과 체계적인 고찰이 수반된다. 의학계에서는 이러한 비평적 분석이 이뤄지고 난 후의 단계를 '여과된 정보'로 분류하고 이전의 단계는 여과되지 않은 정보로 여겨진다.

여과된 의료정보는 교과서에 실려서 의학도들에게 교육된다. 이러한 결과로 많은 의료 기술에 대한 표준화가 이루어져 있다. 중의나 한방 쪽에선 이러한 의술의 표준화가 어느 정도 이루어져 있는지 필자는 잘 알지 못한다. 그러나 소문난 명의 중에 한약이나 침술 혹은 뜸질의 기술이 독특하거나 빼어나 자신만의 비방을 자랑으로 여기는 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 비방은 숨겨서 자신만이 영위할 일이 아니다. 이를 학자들에게 널리 알려 토론하고 동료들의 비평에 따른 합의가 도출될 때 의료기술 발전의 원동력이 된다. 그 부가가치는 금액으로 환산할 수 없다.

대형 의료기관에서 경쟁적으로 도입해 병원 수익에 일익을 담당했던 꿈의 암 진단기로 세간에 알려진 PET-CT가 있다. 하지만 비평적 분석과 체계적인 고찰 결과로 PET-CT가 모든 암을 발견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린 정부가 과도한 의료비 지출을 초래하는 PET-CT를 남용하지 못하게 하는 결정을 내려 얼마 전부터 함부로 검사하지 못하게 됐다. 여과되지 않은 정보의 예는 사실 찾아보면 꽤 있다. 꿈의 암 치료기로 광고하고 있는 양성자 치료기, 중입자 가속기도 사실은 모든 암을 치료하지 못한다. '꿈과 같다'는 표현은 허구이다. 다만 알맞은 적응 대상이 되는 암종에서 탁월한 효과를 나타내기도 한다는 표현이 오히려 적절할 것 같다.

최근 경제 여건이 팍팍하고 의료 환경이 탐탁지 못해 주변의 여러 의사가 심한 어려움을 토로한다. 진료비가 진료원가에 미치지 못한다고 판단하는 많은 의사가 스승으로부터 배운 자신의 전문분야를 버리고 수익이 되는 의료 비즈니스모델에 눈을 돌려 몰두하는 모습을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의업의 주된 역할이 진료와 연구와 교육이라면 이 세 가지 역할을 충실히 실현하고 있는 병원이 얼마나 될까. 비록 의업에만 국한된 상황은 아니긴 하나 특히 의료계의 현시점은 가히 아마겟돈이라고 표현해도 과하지 않을 듯싶다. 혹여 경제적 굶주림에 스승이 전수한 의술을 버리고 사술(邪術)로서 돈벌이에 나서는 사례가 늘어나지 않을까 심히 걱정되는 시점이다.

부산항운병원 병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