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닭의 해, 정유년이 어느덧 3주가 지났다. 지난 1일 많은 사람이 붉게 떠오르는 새 해를 보면서 새로운 희망을 찾으려고 했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민족 최대의 명절 설날 연휴가 눈앞으로 다가왔지만 아직 일부 시민은 지난해가 남긴 어둠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먼저 부산의 신발업체를 줄도산 위기로 내몬 '스베누 사태'는 1년째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스베누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지난해 공동채권단을 구성한 신발업체 100곳 중 10곳이 문을 닫았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대형 신발업체들이 중국과 베트남으로 거래처를 옮긴 뒤 공장 가동률도 80~90%에서 50% 이하로 떨어졌다. 월급과 명절 상여금 부담이 큰 설날을 앞두고 채권단 업체들은 아직 받지 못한 생산대금 180억 원에 대해서는 꿈도 꾸지 않는다. 다만 이미 납부한 부가가치세 18억 원 환급만을 바라고 있다. 채권단 부진후 간사는 "부가가치세를 환급받지 못하면 업체 4~5곳이 쓰러진다"며 "통상 환급까지 3년이 걸린다는데 그러면 신발회사들은 다 망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부산경제를 이끌던 해운·조선업 역시 한진해운 법정관리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구명소화설비 제작·정비전문업체인 A 회사의 거래처 중 한진해운은 매출액과 수익 모두에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주요 거래처인 한진해운과 거래가 끊기자 A 사 전체 매출 중 상당 부분이 사라졌다. 항해용 통신장비를 제조·수리하는 B 업체 역시 전체 매출이 20% 이상 줄었다. B 회사 직원은 "한진해운이 흔들리면서 부산의 많은 중소기업이 직간접적인 타격을 받았다"며 "문제는 앞으로 나아질 희망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라고 하소연했다.

청년 실업에 신음하는 청년들도 마찬가지다. 부산에서 대학교에 다니는 임종하(26) 씨는 자취방 월세, 공과금, 휴대전화 통신비 등으로 매달 45만 원씩 지출하고 있다. 경주 출신으로 부모님께 용돈을 받아 생활하고 있는데 무섭게 치솟는 물가가 부담스럽다. 1년 넘게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인 임 씨는 "학생이라 겨우 버티고 있는데 언제나 부모님에게 죄송스러운 마음뿐"이라고 말했다.

스베누 사태로 피해를 입은 신발업체, 한진해운 여파에 시달리는 조선기자재업체 그리고 청년들. 이들 외에 아직도 우리 주위에서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 적지 않다. 곰곰이 따져보면 그들은 자기들에게 주어진 환경에서 열심히 살았다. 붉은 닭의 해는 그 붉은 빛을 특정 사람들에게만 비추지 말고 추운 곳에서 고생하는 사람들에게 골고루 나눠줘 모두가 희망을 가슴에 품기를 기대한다.

사회1부 superch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