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속초에 사는 가장 큰 기쁨 중 하나는 설악산을 옆 산으로 둘 수 있다는 점이다. 날씨가 괜찮은 날이면 우리는 설악산으로 간다. 등반이 아니라 산 아래 산책길을 2시간 남짓 걷는다. 그 산책길의 이름을 누가 붙였는지 모르지만 '명상의 길'이라고 한다.

이 산책길을 다니며 나는 명상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경험한다. 도시의 소음이 사라진 그곳은 묵음 버튼을 누른 듯 순간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그런데 잠시 후 상황이 달라진다. 마치 귀가 새로운 버전으로 세팅된 듯 들리지 않던 수백 가지 소리가 들려온다.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 다람쥐가 나무를 타는 소리, 오색딱따구리가 나무 기둥을 쪼고, 솔방울은 예고도 없이 툭툭 떨어지고, 나무 기둥에서 들리는 보글거림은 귀를 의심케 하고, 나뭇잎 바스락거리는 소리에는 누가 따라오나 싶어 자꾸 뒤를 돌아본다. 이 많은 소리 속에 명상은 나로서는 쉽지가 않다.

우리의 귀는 20헤르츠에서 2만 헤르츠 사이의 소리를 듣는다. 이보다 더 작은 소리는 듣지 못하고, 돌고래가 내는 2만 헤르츠 이상의 소리도 우리는 듣지 못한다. 우리의 귓속에는 머리카락과 같은 잔털이 있는데, 이것이 공기 중에 진동으로 전달돼 오는 소리를 감지해 뇌로 전달해 무엇인지를 판단하게 한다.

우리는 단순히 좋은 음악을 듣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우리의 청각은 이 복잡한 일을 해내는 셈이다. 많은 과학자는 그렇다면 식물도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를 궁금해 왔다. 일부 논문에서는 음악을 들려주었을 때 식물의 성장이 빨라지고 좀 더 빨리 싹을 틔웠다는 설을 제기했고, 포도 농장에 클래식 음악을 틀어놓으니 포도 수확량이 증가했다는 논문도 있다. 그러나 이런 다양한 설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식물이 소리를 듣고, 그 소리에 반응한다는 과학적 증명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다만 인간의 귓속에 있는 청각 세포와 똑같은 세포가 식물에도 있는 데 이것이 듣는 용도가 아니라 뿌리에 잔털로 존재하며 물과 영양분을 흡수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더불어 이스라엘의 텔아비브 대학의 해대니 박사는 벌의 날개 비벼대는 소리가 식물의 개화를 좀 더 빠르게 만든다는 것을 밝혔다. 스위스의 베른 대학에서는 소나무와 참나무가 가뭄이 심할 때 스스로 초음파를 만들어 이웃 식물에 전달한다는 사실도 증명했다. 그러나 이 모든 연구도 동물과 같은 청각 기능에 의해서가 아니라 진동이 식물의 잎을 건드려 그 터치에 의해 정보를 받아드린다는 결론이었다.

식물은 왜 우리와 같은 듣는 기능을 갖지 않고 있을까? 여기에 대해 미국의 식물학자, 다니엘 샤모비츠 박사는 흥미로운 의견을 제시한다. 우리가 보고, 듣고, 움직이고, 말하는 기능을 갖게 된 것은 위험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고 잘 살아남기 위해서다.

식물은 이런 기능 없이도 이 지구의 생명체 중에 가장 오래 살아남아 있고, 앞으로도 기상이변이나 재앙에 의해 지구에 변화가 찾아온다 해도 그 어떤 동물보다 식물이 이 지구에 끝까지 남아 있을 확률이 높다는 것을 모든 과학자가 인정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고도로 발달해 있다고 생각하는 우리 몸의 기관이 생존에 그리 유리하지 않을 수도 있다. 샤모비츠 박사의 결론은 식물은 귀나 눈, 입이 없이도 심지어 위험으로부터 도망을 칠 수 없어도 모든 소통과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이다.

식물은 병원균에 감염되거나 곤충으로부터 심각한 공격으로 받으면 화학 가스를 만들어 분출한다. 이 가스는 자기 옆 가지 혹은 옆 나무로 전달되는데 이때 이 가스를 맡은 식물은 자신의 몸을 화학적으로 변화시켜 병원균을 아예 방제하거나 혹은 곤충에게 치명적인 독을 만든다. 그뿐만 아니다. 똑똑한 식물은 자신의 씨앗을 지키기 위해 잎과 씨에 동물과 곤충에게 치명적인 독을 함유하기도 한다. 필요가 없으면 발전시키지 않는 것이 이 지구에 사는 생명체의 법칙이다. 이 지구의 진정한 주인이라고 불리는 식물이 듣고, 보고, 말하는 기능이 있지 않다는 것은 그것이 생존에 굳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인 셈이다.

샤모비츠 박사는 하나의 가설을 더 제시한다. 어쩌면 우리가 알고 있는 기능이 아닌 우리가 짐작하기 힘든 방식으로 식물들은 이미 보고, 듣고, 말하고, 소통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식물이 가득한 숲속이나 산길을 걸을 때 우리 몸에는 회복의 에너지가 생겨난다. 영국에서는 최근 의사들이 공식적으로 쓰는 처방전에 진통제 대신 '일주일에 두 번 숲속 걷기' '일주일에 두 번 원예 활동하기' 등을 처방할 수 있게 했다. 단순히 기분이 좋아지는 차원이 아니라 우리 몸에 실질적인 진통 효과가 나타난다는 것을 의학적으로 증명했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를 우리는 고도로 발달된 사회라고 얘기한다. 정말 그럴까, 라는 의문을 나는 수도 없이 한다. 자연과 가까이하면 할수록 우리가 잃어버린 그 무엇이 너무 많다는 것을 매번 깨닫기 때문이다.

작가·가든 디자이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