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 년을 직업 교향악단 연주자로 살았다. 동료 음악인들과 함께 사회에 보탬이 되고자 만든 봉사 오케스트라 UKO의 운영을 맡고는 있지만 누가 나의 정체성을 물어온다면 나는 주저 없이 '연주자'라고 대답할 것이고, 문화 예술인 대부분의 대답 역시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본다. 음악이든, 무용이든, 연극이든, 모두 그 세계가 그저 좋아서, 그 세계 속에 풍덩 빠져서 사는 사람이 바로 예술인이다.
내 경우에는 예술의 틀을 벗어나 세상을 바라보는 계기가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UKO 활동이었다. UKO는 우리도 음악으로써 무언가 사회에 기여하는 활동을 하면 좋겠다는 뜻을 지닌 동료들과 중지를 모아 2006년에 설립했으며, 지금까지 공연 수익금으로 난치병 어린이들의 치료비 지원을 하고 있다.
설립 당시 재능 기부라는 개념도 없었던 때였고 자선 목적의 민간 오케스트라는 전국적으로도 사례가 없어 그야말로 좌충우돌했다. 무엇보다 음악이라는 세계밖에 몰랐던 우리는 경비가 있건 없건 간에 음악이 가장 중요하다고 여겼다. 운영하는 후원회에서는 지속적인 운영을 위한 경영 개념과 실질적 사회 기여 부분에 대해 더 중점을 두고자 했다. 초반에는 양쪽의 입장 차이 때문에 적지 않은 갈등을 겪었다.
음악이라는 콘텐츠는 가지고 있었지만 이것을 공연으로 만들고 실제 수익을 내기 위해서는 후원회와 언론, 방송사 등 사회 각계각층의 이해와 지원이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그때는 미처 깨닫지 못했다. 하지만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가 아닌가. 시간이 흘러가면서 우리는 보배를 만들기 위해 역지사지의 입장에서 서로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럼으로써 더 적극적인 후원과 동참이 이어졌고, 더 지평이 넓어진 음악을 할 수 있었으며, 결과적으로 더 큰 보람과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역사적으로 문화와 예술을 살펴보면, 고대와 중세 시대에는 주술과 통치, 선동과 현혹, 그리고 종교를 위한 수단이었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인간의 심미적 본성을 표현하는 수단이었으며, 고전시대에는 귀족과 왕에 의한 사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보호되고 육성되었다. 근대에 와서는 상류층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 사회 부조리 노출 및 사회 고발적 수단으로 예술이 이용되었으며 현대에는 자본주의의 이념에 따라 상업적 목적의 예술이 주목받기도 했다. 이처럼 예술이 사회적 목적이 될 수 있는 것은 본질에서 인간의 감성과 정서에 호소하는 바가 크고, 그 영향력이 막중하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시대, 대한민국은 문화와 예술에 무엇을 기대하고 바라고 있을까. 2013년 말 국회를 통과해 제정된 '문화기본법'에 의하면 문화 표현과 창작활동, 참여 활동 및 문화 향유의 기회 등이 모든 국민의 기본적인 권리로 규정되어 있다. 문화의 가치와 위상을 높여 문화가 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국가 사회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게 하려고 만들어진 이 법에 대해 전문 문화 예술인들이 특히 눈여겨보고 깊이 새길 것이 있다. 바로 문화에 대한 모든 권리가 '문화예술인'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국민'에 있다는 것이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영화 '라라랜드'에서 주인공은 고뇌와 불안 속에 살아가는 예술가의 삶의 가치에 대해 표현하는 노래를 부른다. 부서지는 가슴과 망가지는 삶들을 위해 화가와 시인과 광대들, '우리 같은 사람'이 필요하다고. 문화의 권리가 모든 국민의 권리로 규정되고 문화와 예술이 삶의 질 향상과 국가 발전에 기여하기를 기대하는 이 시대,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과 함께 호흡하지 못하는 예술은 가치가 없다. 우리 예술인들은 더욱 낮고 겸허한 자세로 기본에 충실해야 하지 않을까.
사실 UKO도 현재 복잡한 사회 사정과 어려운 경제 때문에 후원과 티켓 판매가 잔뜩 어려워진 탓에 향방을 가늠하기 어렵지만 지금까지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100여 회의 공연을 치러내며 난치병 어린이들에게 새 생명을 불어넣게 해 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순수한 예술이 주는 감동과 더불어 선한 취지에 대한 후원회와 관객을 비롯한 사회 각계각층의 깊은 공감과 이해, 지원 덕분이었다(지면을 빌려서나마 무한한 감사를 표현하고 싶다). 관객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순수한 감동에는 지원과 후원이 자연히 따를 것이라고 믿는다.
2017년 새해에는 진정한 문화 융성으로 우리가 모두 행복해질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UKO 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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