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문화수도(European Capital of Culture)는 유럽연합이 유럽을 상징하는 회원국의 도시를 매년 선정해 1년간 집중적으로 각종 문화 행사를 펼치는 사업이다. 1985년부터 이어지는 이 프로그램은 문화와 예술의 창의성을 경제만큼이나 중요하게 여긴다는 증거다.

올해 유럽 문화수도는 덴마크 제2 도시이자 항구 도시인 오르후스와 그리스 신화에서 아프로디테 여신의 탄생지로 유명한 키프로스 남서부 해안 도시인 파포스. 특히 오르후스는 'Let's Rethink'라는 슬로건 아래 덴마크의 전통과 현대 문화가 어우러지는 다양한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2008년 유럽 문화수도인 영국 리버풀은 1파운드를 투자해 12파운드의 부가가치를 창출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이에 힘입어 영국 정부는 4년에 한 번씩 문화도시를 정해 경제 및 관광 활성화를 꾀한다. 올해 영국 문화도시는 프리미어리그 헐시티AFC의 연고지인 헐이다. 인구 25만여 명인 이 도시는 한때 포경 기지였으며, 2차 대전 때 영국에서 가장 폭격을 많이 당한 도시다.

헐은 지난해 7월 한 장의 사진으로 이미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세계 20개국에서 온 자원봉사자 3200명이 알몸에 파란색 보디페인팅을 한 채 찍은 누드 사진이다. 올해 문화도시 행사 가운데 하나인 '헐의 바다'(Sea of Hull) 촬영이었다.

문화 전쟁의 시대를 실감하는 예이다. 그 최전선에 미술관이 있다. 도시 얼굴 역할을 하는 미술관은 차고 넘친다. 런던 템스 강변의 폐발전소는 테이트 모던 갤러리로, 파리의 폐철도역은 오르세미술관으로 거듭나며 도시를 상징한다. 쇠락한 제철도시를 일으켜 세운 스페인 빌바오 시의 구겐하임 미술관을 빼놓을 수 없다.

구겐하임 미술관의 교훈은 단지 미술관 자체가 작품이 되는 세계적인 건축가 프랭크 게리의 창의성에 국한되지 않는다. 죽음의 강으로 변한 네르비온 강과 주변을 미술관과 함께 살려낸 것이다. 문화를 통해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고, 세계적인 예술적 지위를 얻으며, 산업과 연결되는 총체적 시설을 만든다는 세 가지 콘셉트가 주효했다. 그러니 헤밍웨이가 '무덥고 추한 광산도시'라고 꼬집었던 빌바오가 세계의 주목을 받는 문화예술도시로 탈바꿈할 수 있었다.

부산 사하구 을숙도에 들어서는 부산현대미술관은 낙동강과 더불어 부산을 상징하는 콘텐츠로 부산의 얼굴이 되어야 한다. 도시를 살리는 미술관은 부산 시민에겐 꿈인가.

정상도 논설위원 jsdo@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