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조선·해양플랜트산업은 1970년대 초에 불모지와 다름없는 상태에서 국가적인 육성 지원책을 바탕으로 조선산업 부문 세계 1위로 성장했다. 경제성장 동력원으로 다년간 수출액 1위를 기록하며 국민적인 관심과 사랑을 받아왔다. 그러나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와 저유가 지속 등 국내외적인 요인으로 장기침체의 늪에 빠져있다. 곧 저무는 올해는 특히 힘든 한 해를 보냈다.

국내 조선소의 수주량, 건조량, 수주잔량 등 조선산업 지표가 갈수록 악화되고 회복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중소형 조선은 자생력이 부족해 2009년 이후 문을 닫는 업체가 속출했다. 한국조선공업협동조합 소속의 소형 조선업체는 2004년 124개에서 2014년 69개로 감소할 정도다.

그동안 조선산업의 위기 대응방안으로 금융 및 세제 지원, 선수금 환급보증, 사업 다각화, 기술개발 지원, 신조선박 수요 창출, 퇴직인력 대책 등이 나왔다. 정부는 2016년 추경예산으로 관공선 조기발주와 노후선박 현대화 사업으로 일감을 창출하고 있으며, 대형 조선소 퇴직인력 지원사업을 추진하고 있어 매우 적절한 정책으로 생각한다. 산업통상자원부가 2016년 추경예산으로 추진하는 '조선산업 퇴직인력 교육 및 재취업 지원사업'에 중소조선연구원이 총괄 주관기관으로 선정돼 지난 9월부터 사업의 성과 달성을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다. 대형 조선소의 구조조정으로 인한 고급기술과 인력을 중소형 조선업계에 연계해 지원하는 사업으로, 퇴직자의 이직교육은 물론 재취업 지원, 기술지도, 사업화 컨설팅 등이 진행되고 있다. 내년에도 정부 지원은 계속된다.

정부는 지난 10월 31일 '제6차 산업경쟁력 강화 관계장관 회의'를 개최하고 조선산업 경쟁력 강화방안을 발표했다. 여기서 기존의 조선산업(Ship Building Industry)을 선박 서비스를 포함한 '선박산업(Ship Industry)'으로 전환하는 방안이 만들어졌다. 정부가 발표한 조선산업의 경쟁력 강화방안에는 경영위기에 빠진 중소형 조선소의 회생을 위해 일감을 공급하는 등 실제적이고 시급한 내용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중소형 조선산업이 정상화되고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단기적 응급처방과 개별기업의 구조조정도 필요하지만, 더욱 근본적이며 장기적인 해법이 절실한 상황이다.

중소형 선박은 세계조선시장 약 3만 척 중에서 거의 절반을 차지할 만큼 규모가 큰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중소형 조선소는 일반 상선, 레저용선박, 연안여객선, 어선, 경비정, 함정, 작업선, 특수목적선 등 다양한 선종을 대상으로 하고 있어 조선기자재산업 등 파생산업의 발전효과도 크다. 중소형 선박을 대형 조선소에서 건조할 경우 시설회전율과 생산효율성 저하로 경제성이 낮아진다는 점에서 특화된 중소형 조선소에서 건조하는 것이 적합하다. 게다가 중소형 조선소는 지역에 산재해 지역경제 활성화와 고용 효과가 매우 크다. 기술지원 및 금융지원의 반응이 빠르고 효과가 크다는 장점이 있다.

그동안 우리나라 조선산업은 수출주도형인 대형 조선소 중심으로 발전해 왔으며, 중소형 조선소의 기술개발 및 지원체계는 아주 미약한 실정이다. 기술기반이 부족한 중소형 조선산업을 지원하기 위해 가장 시급한 것은 설계지원센터와 같은 기술지원체계를 갖추는 것이 필요하며, 이를 위한 핵심시설인 고속예인 수조가 구축되어야 한다. 새로운 선박을 설계 개발하기 위해서는 건조 전에 선박의 주요성능을 예인 수조시험을 통해서 검증하고 평가하는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중소형 조선산업의 대상 선종은 대부분 상대적으로 고속범위이며, 이러한 고성능 선박의 개발을 위한 필수적 기반시설이 우리나라에는 구축되어 있지 않다.

세계 제1위의 조선산업 강국임에도 중소형 조선 분야에는 핵심기반시설인 고속예인 수조가 없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다. 중소 조선업체들은 해외 연구기관의 수조 설비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 인력과 시간 낭비뿐만 아니라 경제적 부담이 크고, 해외 고속수조를 이용함으로써 경쟁국들에 선형설계기술 시험평가기술 등 핵심기술이 유출되고 있다.

다가오는 새해에는 대형 조선산업 중심인 국가 조선산업의 생태계 구조가 재조정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해 중소형 조선산업이 산업의 한 축으로서 성장 발전하고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지원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특히 고속예인 수조 같은 핵심기술기반을 갖추어 체계적이고 지속적으로 지원하는 정책이 우선 필요하다.

중소조선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