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들은 자식이 어떤 사람이 되길 원할까. 현재 우리 부모들의 염원으로 성장한 자식들은 훗날 어른이 되어 좋은 사회를 만들 수 있을까.

올해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감독상 수상작인 맷 로스 감독의 '캡틴 판타스틱'에서 아버지 벤은 아내와 함께 세상과 격리된 숲속에서 이상적인 가족공동체를 꾸린다. 벤과 아내는 플라톤의 '국가론'에 나오는 철인(哲人)으로 아이들을 기르고 싶었기에 여섯 자녀를 학교에 보내지 않고 직접 가르친다. 독서와 자유토론으로 문학과 철학, 과학, 예술을 가르치고 사냥, 호신술, 암벽 등반 등 신체 단련을 병행하는 전인 교육을 통해 자식들을 철인으로 기르고자 했다.

늦은 밤, 모닥불 가에 둘러앉아 책을 읽다 아버지의 주도로 자유롭게 토론하고, 아버지가 기타를 들고 모닥불 앞에 앉으면, 아이들이 각자 기타, 하모니카, 탬버린, 북 등을 하나씩 가져와 합주를 펼치는 장면은 반짝이는 별과 숲의 어둠, 따듯한 모닥불과 어울려 이상적 공동체의 낭만성을 극대화하는 미장센이다.

이렇게 바깥세상과 단절된 채로 유지될 수 있을 것 같았던 이상적인 공동체는 벤의 아내이자 여섯 아이의 어머니인 레슬리의 자살로 위기를 맞는다. 조울증에 시달리던 레슬리는 병원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외할아버지의 반대에도 일곱 식구는 엄마의 장례를 치르고자 긴 여행에 나선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은 마땅히 따라야 했던 아버지의 권위를 의심하고 반기를 든다. 벤은 늘 자녀들과 자유롭게 토론하며 의견을 존중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신념 틀 안에서였다. 벤처럼 회의하지 않고 달려가는 자의 맹목이 신념으로 미화되는 순간, 흔들리지 않는 신념은 아집으로 변질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이 좋은 공동체란 어떻게 가능한가를 다룬 책이라면 그의 '니코마스 윤리학'은 이러한 공동체를 위해 개인이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다루었다. 좋은 공동체를 위한 좋은 개인은 어떤 사람인가. 영화에서 아버지 벤이 좋아하는 언어학자이자 진보적 지식인 놈 촘스키의 주장대로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에 저항하는 비판적인 인간인가. 플라톤이 주장한 철인인가.

플라톤이 주장한 철인정치의 바탕은 교육이며, 철인을 만들기 위한 교육은 6세부터 시작해 50세까지 계속된다. 자연 속에서 생존능력을 배우고, 재택교육으로 6개 국어를 익히며, 문학과 철학 수학과 물리 등을 단순한 지식이 아닌 토론을 통해 자신의 의견을 분명히 밝히는 교육을 받고, "민중에게 권력을! 권위에 저항하라!"는 구호를 가훈처럼 외치는 아이들은 부모의 바람대로 현대판 철인에 근접해 가는 듯하다.

문제는 이 아이들이 고립되어 있다는 점이다. 플라톤의 철인이든 촘스키의 비판적인 인간이든 무균실에 격리하여 인위적으로 배양할 수는 없다. 책을 통한 앎이 세상과 교유하는 삶과 만날 때, 그리하여 공동체 속에서 앎과 삶이 끊임없이 충돌하고 시행착오를 거칠 때, 아이들은 성장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스 윤리학'에서 궁극적으로 선은 자족적인 것이라 하였다. 그가 말하고자 한 '자족'은 고립된 삶을 사는 개인에게 충분하다는 뜻이 아니라, 가족을 넘어 그의 친구들이나 동료 시민들에게도 충분하다는 것을 뜻한다. 선은 자체가 행동의 목적이기에 자족적이다. 착한 사람은 선한 행동으로 쾌락을 목적하지 않고 그 자체로 자족하되 고립되지 않는다. 자족이 고립과 혼동되면 자폐가 된다. 지금 우리 사회가 혼란한 것은 선을 자폐적인 것으로 오해하는 자들이 공동체를 이끌기 때문이다. 끊임없는 거짓말로 부정을 엄폐하고, 그들만의 쾌락과 욕망을 추구했던 자들, 그들의 자폐성이 공동체를 흔들고 있다. 자족과 자폐는 다르다.

광장을 메우며 물결치는 촛불 속에서 평범하고 착한 사람들의 사회를 꿈꾼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적 탁월성인 덕은 메소테스, 즉 중용에서 나온다. 두려움이 지나치면 겁쟁이가 되고 너무 겁내지 않으면 무모함이 된다. 무모한 자의 만용과 허세는 폭력이 되고 겁쟁이의 나약은 방관이 된다. 용기는 무모함과 나약함 사이에 존재하는 윤리적 덕목이며, 두려워하되 방관하지 않는 자의 중용이다. 용기 있는 자는 착한 사람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메소테스가 절대적 도덕률에 기대지 않고, 개별적인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을 판단하는 실천적인 덕으로 이를 통해 인간의 품성이 나타난다고 하였다. 영화 끝에서 자신의 오류를 반성한 벤은 숲속에서 자족의 가족공동체를 유지하면서 아이들을 세상에 내보내는 메소테스를 실천한다. 아이들은 숲속에 고립되어 책과 토론으로만 배우지 않고 광장과 시장으로 나아가 저항하고 실천하는 법을 익힐 것이다. 추운 날씨에도 촛불집회에 자녀들과 함께 온 부모가 많았다. 배움은 학교나 책 속에만 있지 않다. 이 부모들과 자녀들이 '착한 사람들의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거라 믿는다.

동아대 한국어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