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뜩이나 경제가 어려운 우리나라에 최근 하나의 뉴스가 블랙홀처럼 세상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고 있어 걱정이다. 그 많은 똑똑한 사람이 지키고 있는 우리나라가 왜 이 상황이 되고 있는지 정치에 문외한인 일개 시민으로서 너무나도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쏟아져 나오는 여러 뉴스가 정신을 차리지 못할 지경으로 뭐가 옳고 뭐가 그른지조차도 모르는 아노미 세상이 된 듯한 느낌이다. 평소 다양한 소식을 얻을 수 있었던 뉴스가 꽤 긴 기간 동안 특정 상황만 내보내는 현실이 다음 날 방영을 기대하는 드라마처럼 이젠 흥미진진하기까지도 하다.
얼마 전 한비자에 나온 狗猛酒酸(구맹주산)이라는 사자성어를 어느 유명 TV의 메인뉴스에서 얘기한 적이 있었다. 개가 사나우면 술이 시어진다는 뜻이다. 아둔한 머리 때문에 책을 찾아보니 어느 술 빚는 도가에서 평소 술을 잘 빚었고 맛도 좋은데 술이 팔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유는 술도가에 사나운 개가 지키고 있어서란다. 나라에 간신배가 있으면 어진 신하가 모이지 않음을 비유하는 말이다. 한비자는 그러한 상황을 경계하라는 의미였을 터. 오랜 세월을 지난 현시대에 다시 이 사자성어가 입가에 회자되니 한탄스럽기도 하다. 누군가 역사는 반복된다고 하는 말처럼 인생 70~80년을 살면서 겪었던 경험들은 100년 아니 1000년 전에도 반복됐다는 것이다.

어려움을 극복하고 나라를 이끌어가는 자리에 올라간 그 많은 학식이 깊고 똑똑한 분이 왜 이렇게 국민의 몸과 마음을 힘들게 하는 것일까. 굳이 나 자신이 병을 만들지 않더라도 병이 저절로 생겨버리고, 그 아픔을 쓴 약으로도 해결 못하는 답답한 마음이 얼마 전부터 만성화되어 가는 느낌이다.

문득 현명함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사전에 현명함이란 지혜롭고 사리에 밝음을 말한다. 공자는 "현명한 사람을 보거든 그를 본받아 닮고자 하며, 현명하지 못한 사람을 보거든 그를 거울삼아 자신을 반성해야 한다"라고 하였다. 그 많은 지혜롭고 사리에 밝은 사람은 어디 갔는가? 현명함을 발휘해야 하는 이 시점에 근본을 버리고 권력과 명예의 욕망만을 엄청나게 좇아갔던 것은 아니었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또한 현명함을 갖지 못하고 자리만 좇아가려는 현실을 과거 공자는 "이렇다 할 자리가 없다 근심 말고 자리에 앉을 만한 실력을 갖추었는가 근심하라.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 없다 근심 말고 남들이 알아줄 만한 실력을 갖추도록 힘써라"라고 하였다. 현명함을 원하는 현재 사회에 2500년 전 진짜 현명함이 무엇인가를 말해주는 내용이 새삼스럽게 느껴진다.

예전 우리가 힘들었던 시절에는 잘 먹고 잘사는 게 목표였다. 기술 강국이 된 후에도 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를 잘살게 하는 것이 최상의 목표였다. 하지만 앞으로는 마음을 건강하고 튼튼하게 하며 부끄러움도 알고 참됨도 느끼게 하는 도리를 아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내우외환에 휩쓸리지 않게 된다.

한의학에서 七情(칠정)이라는 말이 있다. 기쁨(喜) 분노(怒) 우울함(憂) 깊은 생각(思) 슬픔(悲) 두려움(恐) 놀람(驚)의 인간 고유 감정으로, 이런 감정이 상해서 발생하는 증상은 음식을 잘 못 먹어서 배탈이 나거나 감기에 걸려서 몸살이 나는 것과 같은 질환보다 더 심각하고 오래간다고 하였다. 본인이 섭생을 잘못하여 생긴 질병이야 어쩔 수 없는 본인 책임이지만 현 세태로 인한 정신적인 아픔은 누구 책임인가. 다시금 현명하게 나라를 다스리고 있는 여러 현자가 지혜를 잘 모아서 국민의 아픈 마음을 헤아리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 또한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이 없는가 그러하지 않았는가를 생각하게 하는 요즘 나 자신을 다시 채찍질하여 긴 겨울의 초입에 마음을 살찌울 수 있는 자신이 될 수 있도록 하자고 다짐해 본다.

동의대 한의과대학 부속한방병원 교수